“내 기부를 세상에 알리지 말라...”

윤가이(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3.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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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연예인 기부에 부쳐

시진제공=스토리제이 시진제공=스토리제이


2020년 3월, 유례가 없을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대한민국 각계각층으로부터 기부와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은 물론 스포츠 스타, 기업가, 유력 인사들의 기부 소식이 시시각각 전해지는 상황. 기부 액수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재앙의 현실 속에서 하나하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어느덧 사태 발발 두 달째, 국내 확진자만 8,000명에 육박하는 바이러스의 공포감 때문일까?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병들고 비뚤어졌다. MBC 예능 ‘나혼자 산다’에서도 장기 활약 중인 배우 이시언이 지난달 말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만원을 기부하고 개인 SNS에 인증샷을 올렸다가, ‘(고작) 100만원 기부한 게 자랑이냐’는 악플에 휩싸인 것이다. 뭇매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로 접하고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아니, 기부금이 100만원 아니라 1000만원 또는 그 이상의 액수여야 했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기부를 플렉스(flex, 과시한다는 뜻을 지닌 힙합 용어)했다고 생각해 화가 난걸까? 이시언이 어느 정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유명인이란 입장에서, 그의 기부 행위가 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 실제로 상당수 연예인들이 코로나19 이전에도 다양한 선행과 사회참여 행동들을 스스로 인증하고 팬들(혹은 대중)에게 독려하는 사례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시언이 스타 OOO처럼 XXX처럼 1억 원을 기부하지 않았다고, 100만원은 너무 소소한(?) 액수라며 무차별적 비난을 받아야 한다니. 차라리 인증샷이라도 없었다면, 기부 사실은 물론 상세한 액수마저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지금 이시언은 편안할 수 있을까?



상황을 보아하니 그렇진 않았을 것 같다. 또 어떤 세상에서는 기부를 하는 스타와 하지 않는 스타를 또 편 가르기하고 돌팔매질을 해대고 있다. 'A는 1억 원이나 기부했는데, B는 왜 손 놓고 있는가?' 'A, B보다도 훨씬 잘 나가는 C는 기부 소식이 안 들린다'며 마치 연예인들에게 기부 배틀을 독려라도 하는 듯한 여론이 생성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OOO는 1억을 했는데, XXX는 3억을 했으니 한층 통이 크고 멋지다'고 치켜세우고 반대편을 깎아내리는 형국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앞서 언급한 이시언은 기부를 하지 않았어도 욕을 먹었을 것이다. 더불어 이왕 기부를 한다면 누구보다 많은 액수를 해야만 ‘위너’다. 정말이지 탄식할 노릇이다.

물론 연예인들이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며, 인기가 많을수록 고소득자란 사실은 명백하다. 화면 속에 비치는 유명 스타들의 휘황찬란한 패션 또는 영화 같은 일상 사진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험을 우린 매우 자주 한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멋진 외모만 부러운 게 아니라 그들이 비싼 자동차를 타거나 큰 집에 살기 때문에 질투가 나기도 한다. 사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타들이라면, 통상적인 월급쟁이 입장에선 넘볼 수 없는 수입을 거머쥐는 것도 사실. 그렇다고 해서 ‘잘 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기부라는 선행이 ‘강요’될 수 있는 문제일까?

기부도 하고 착한 임대인 운동(건물주가 임대료의 일정부분을 감면해주는 것)에 동참도 하는 등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아직까지 선행이 전해지지 않은 스타들이 더 많다고 감히 짐작한다. 무엇보다 기부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 해당 연예인의 의지가 ‘남몰래 선행’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최근 한 유명 배우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소속 배우로부터 현재 후원이 가장 필요한 단체나 기관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배우 개인이 스스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엔 힘에 부치는 탓이다. 그러면서 그 배우는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절대로 기부 사실이 외부로 발설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물색해 달라’는 것.


필자가 연예부 기자를 할 당시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온 나라가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던 시기. 바다 속에 잠겨있을 단원고 아이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실시간 구조 소식에 촉각이 곤두서던 그 때 역시 여기저기 스타들의 온정이 피어났다.

당시 아시아를 호령하던 한 남자 스타의 기부 사실을 제보 받고 취재를 했다. 현재까지도 건재한 그 한류스타는 당시 취재 문의에 대해 “제발 기사화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알려진다는 게 너무 쑥스러워서요. 이거 기사 쓰시면 기자님 다신 안 보겠어요~!”라고 반 협박(?)을 해왔다. 절박한 으름장에 결국 기사 쓰기를 포기했지만 특종 보도에 대한 미련은커녕 마음이 새털 같았다. 이 세상에서 그의 예쁜 마음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나라고, 그의 강직한 소신을 나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

6년이 흐른 지금, 코로나19 환란 속 그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거액을 기부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기부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선한 영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사회, 기부를 하는 이들이 혹시나 오해받을까 애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 코로나19 사태의 종식과 함께 더 맑고 밝은 세상이 열리길 바란다.

윤가이(칼럼니스트, 마이컴퍼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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