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노(No)할라…'의결권 사전공개' 숨죽인 기업들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0.03.09 04:30
글자크기

(종합)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0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2.17/뉴스1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0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2.17/뉴스1


상장사들의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국내 주식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주총 공시가 쏟아지는 이번 주부터 국민연금은 각 상장사들의 안건에 대한 찬반 여부를 사전 공개할 예정이다.



기업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과소배당 등 주주 환원 정책이 미진한 기업들에 반대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높은데, 주가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12일부터 27일까지 96개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사전 공개했다. 의결권 사전 공개란 해당 기업이 주총을 열기 전에 국민연금이 미리 각 안건에 대한 찬반 행사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대상 기업은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 보유한 기업이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비중 1%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의결권 방향을 미리 공개하지 않고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뒤 14일 이내에 행사 내역을 사후 공개해 왔다. 국민연금의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결권 방향을 미리 밝히지 않으면서 다른 기관투자자들과의 협력적 의결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안건에 반대하더라도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국민연금이 노(No)할라…'의결권 사전공개' 숨죽인 기업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도입하면서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의결권 사전 공개는 이 스튜어드십코드의 일환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사전공개한 기업 96곳 중 코스피 기업이 89곳으로 이 가운데 40개 기업 82개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사의 보수 한도에 대한 반대가 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외이사 선임 25건 △감사위원 선임 15건 △정관변경 7건 △사내이사 선임 4건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국민연금이 반대한 기업들의 주가가 대부분 하락했다는 것이다. 의결권 사전공개 첫날인 지난해 3월 12일 23개 기업에 대한 공개가 이뤄졌는데, 이중 국민연금은 현대건설, LG상사, 신세계, 농심, 현대글로비스, LG하우시스 등의 안건에 반대했다.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사외이사 선임 등에 반대했고 그 다음 날 주가는 2.15% 하락했다. 이사 보수 한도 안건이 반대된 LG하우시스 주가는 그 다음 날 1.98% 떨어졌다.

이밖에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분석 결과 국민연금이 반대한 기업 40곳은 의결권 사전공시일 전후 5거래일간 평균 주가가 1.43% 하락했다. 전후 10거래일 동안에는 2.22% 하락으로 낙폭이 더 컸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이 찬성한 기업 주가는 0.33%, 0.04%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그동안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반대행사를 한 기업들의 주가는 10거래일간 평균 3.16% 떨어졌다.

이윤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반대한 기업들의 주가가 유의미하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은 국민연금의 반대를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하지만 대부분 통과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 때문에 주가에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해도 기업들이 주총 안건을 본격적으로 공시하는 이번 주부터 국민연금의 의결권 사전공개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동안 사례로 볼 때 국민연금은 배당이 적은 기업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이 낮은 기업에 반대할 확률이 높다.

국민연금이 노(No)할라…'의결권 사전공개' 숨죽인 기업들
최근에는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연금뿐 아니라 민간 기관들도 기업들의 ESG 개선을 위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기업지배구조원이 산정한 ESG 등급이 낮을수록 반대할 확률이 높았다. 특히 지배구조 부문에서 2년 연속 C등급 이하를 받은 기업들은 25곳 중 22곳이 국민연금의 반대를 받았다. 환경 부문에서 2년 연속 저조했던 기업 47곳에는 모두 반대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 보유한 기업은 약 90곳이다. 이 가운데 최근 2년 연속 지배구조 등급이 C 이하인 곳은 효성, 농심, 아세아 등이다.

효성은 올해 주총에서 조현준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상정한다. 조 회장은 최근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어 국민연금의 결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반대를 받은 기업 중 지배구조를 개선한 경우 기업가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은 기업의 리스크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제고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