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총회장 입장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스1
국내 대기업 상장사들이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COVID-19)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주총을 강행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혹시나 사내에서 주총을 열었는데 확진자가 나오면 '직장 폐쇄'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정관 변경이나 이사·감사 선임, 재무제표 승인 같은 중요 안건들을 주총 결의 없이 건너뛸 수도 없다.
LG전자 (91,200원 ▼1,400 -1.51%)와 LG디스플레이 (9,930원 ▼120 -1.19%)는 이런 이유로 올해 주총 소집 결의 공시에서 이례적으로 '장소 변경' 가능성과 이에 대한 권한 위임을 명시했다. LG전자는 "코로나19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주총 일정과 장소 변경은 대표이사에게 위임한다"고 못 박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정 변경의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노조의 주총장 봉쇄에 따른 주총 시간과 장소 변경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코로나19 같은 재난사태 시 주총 일정과 장소를 변경해도 된다는 판례는 아직 없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주총 당일 대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감염병과 재난사태에 따른 주총 변경이 합법이냐는 법적 문제에 휘말릴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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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서도 공공시설 주총 장소 금지 방침이 내려지며 기업들의 고민이 커졌다. 삼성중공업은 판교 글로벌R&D센터 1층 대강당에서 주총을 열려고 했지만 뒤늦게 '대관 불가' 통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자사 사옥으로 장소를 옮겼다.
재계 관계자는 "상장사 대관을 취소 당해 주총 장소를 다시 알아보는 건 사상 처음 보는 일"이라며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옥을 주총 장소로 삼는 모험을 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말 주총 관련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 등의 제출 기한을 늦춰주는 '정기주총 안전 개최 지원 방안'을 내놓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이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주총장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참석자들의 체온을 일일이 확인하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할 방침이지만 감염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전자투표제와 의결권 대리행사제도 활용도 방법이지만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전체 상장사(2354개사) 중 63.1%(1486개사)에 그친다.
일부 기업은 주주들의 주총 참여가 극히 적을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전체 코스닥 상장사의 41.9%인 544곳이 올해 주총에서 감사와 감사위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코로나19 탓에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