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One]네덜란드 의사가 내시경 대신 카메라를 든 사연은?

뉴스1 제공 2020.03.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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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C병원 라이 '암 극복' 환자 사연 담은 사진전 개최

(헤이그=뉴스1) 차현정 통신원[편집자주]정통 민영 뉴스통신사 뉴스1이 세계 구석구석의 모습을 현장감 넘치게 전달하기 위해 해외통신원 코너를 기획했습니다. [통신One]은 기존 뉴스1 국제부의 정통한 해외뉴스 분석에 더해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포진한 해외 통신원의 '살맛'나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 현지 매체에서 다룬 좋은 기사 소개, 현지 한인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슈 등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소개합니다.

네덜란드 HMC 내과 전문의 조너선 라이 (조너선 라이 제공) © 뉴스1 차현정 통신원네덜란드 HMC 내과 전문의 조너선 라이 (조너선 라이 제공)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헤이그=뉴스1) 차현정 통신원 = "암환자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메시지를 사진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HMC병원의 내과 전문의 조너선 라이(48)가 암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사진 전시회를 기획했다. 평소 환자들을 진찰할 때 쓰던 내시경 카메라 대신 '진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초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의대 입학 전부터 사진 촬영을 좋아했던 라이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취미삼아 직원들의 모습을 종종 찍어 이미 병원 내 비공식 사진사로 유명했다.



라이는 그러던 중 미국의 유명 사진 블로그 '뉴욕의 사람들'(Humans of NewYork)을 보고 영감을 얻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은 암환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뉴욕의 사람들'은 지난 2010년부터 뉴욕 길거리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블로그다.

라이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수차례 수술·치료로 지친 환자들의 모습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병마와 맞서 싸워 치료가 끝난 후의 복잡미묘한 감정까지도 카메라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병원 내 정보광장 건물에서 열린 라이의 사진전엔 암을 이겨낸 환자 10명의 초상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과 함께 정신과 의사 티케네 보스가 작성한 인터뷰엔 암환자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 있다.


HMC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환자 이마 (조너선 라이 제공) © 뉴스1 차현정 통신원HMC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환자 이마 (조너선 라이 제공)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이마(Imma·35·여) = 31세가 됐던 해 어느 월요일 아침 병원에서 남편과 함께 유방암 진단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반항하듯 소리치고 울었습니다. 마취되기 직전까지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지만 내 몸은 울부짖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다음날 난 거울 속의 내 몸을 오랫동안 응시했습니다.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신을 아름답고 여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보형물을 착용하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장하고 암을 이겨낸 내가 대견했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나는 암으로 인해 새로운 몸을 갖게 되었고, 그 새로운 몸에 감사합니다.

저는 병을 이겨내고 작년엔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매일 매일 새롭게 자라고 저에게 삶의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크라인(Krijn·65) = 3년 전 5월 종양 때문에 뇌출혈이 왔고 그 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죽음만이 날 기다린다고 생각했어요. 수술로 종양은 대부분 제거하긴 했지만 6주간 매일같이 화학요법과 방사능을 이용한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삶을 되돌아보면 매우 지치고 피곤해서 말을 거의 할 수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암으로 죽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죠. 암을 겪은 뒤 내 인생은 더 풍부하고 성숙해졌습니다. 난 긍정적으로 변했고 만사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젠 이 병을 함께 앓는 환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 힘내세요! 이겨 내세요! 당신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 HMC 소재 병원 전경 © 뉴스1 차현정 통신원네덜란드 헤이그 HMC 소재 병원 전경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라이는 이번 전시회 주제를 '회복'(Resilience)으로 정했다. 환자들이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만 여겼던 투병생활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환자들과 의료진에게 무한한 지지와 영감을 주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병원 내 작은 이벤트로 그칠 수 있었던 이 사진전은 의료진, 환자와 그 가족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면서 '삶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보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라이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진전을 통해 사람들이 '사망선고'와도 같은 암 진단부터 험난한 치료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한국 독자분들이 직접 전시에 올 순 없겠지만 이들 암환자와 의료진의 긍정적인 힘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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