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뱅신화' 이용우, 수백억 포기하고 정치에 뛰어든 이유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20.03.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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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2020스카우팅리포트]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고양정 총선에 나서는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사진제공=민주당.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고양정 총선에 나서는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사진제공=민주당.


대한민국은 '규제 공화국'이다. 청년과 창업가들의 혁신적인 시도들은 규제 앞에 무산되기 일쑤다. 정부와 정치권은 수년째 한목소리로 '규제 철폐'를 외쳤지만, 달라진 게 없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사진·55)는 자신의 정치적 소명을 '규제 재정비'라는 단어로 응축해서 표현했다. 이 전 대표는 "강화해야 할 규제와 철폐해야 할 규제를 구분하는 데에서 새로운 혁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 완화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와 책임의 관계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등 규제 완화에 따른 사회적 책임 부과가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는 현대경제연구원, 동원증권,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에서 일한 금융 전문가다.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초대 대표를 맡아 고객 1000만명 돌파 신화를 이끌었다.



고객을 모아도 돈 벌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을 깨부수고 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 전 대표의 경영능력이 다시금 주목받던 시점, 정치 입문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카카오뱅크 스톡옵션 52만주를 포기하면서까지 내린 결단이다. 액면가로만 26억원에 달한다.

그에게 정치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묻자 "우리 아들에게 권할 만한 직장이 없는 사회를 물려줄 순 없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경제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자신들만 살아남으려는 사회, 선뜻 창업을 권할 수 없는 사회, 도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는 사회를 물려줘선 안 된다"며 "한국 경제에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치인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경기 고양정에 전략공천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불출마한 지역구다. 미래통합당에선 현역 비례대표인 김현아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

이 전 대표는 "우선 주민들의 의견을 비대면 방식을 중심으로 듣고 있다"며 "주민들의 불편과 지역 문제를 파악해서 잘 해결하는 게 제 과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산에는 테크노밸리, 킨텍스 등 자원이 많이 있다"며 "이런 하드웨어들을 잘 엮어서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고양정 총선에 나서는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사진제공=민주당.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 고양정 총선에 나서는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사진제공=민주당.
다음은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와 일문일답.

-정치를 해야 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뭔가.
▶청년에게 권할 만한 직장이 없는 대한민국을 물려줘선 안 된다는 다짐 때문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신입사원들도 몇 년 지나면 틀에 갇히는 사례를 많이 봤다. 청년들이 가진 좋은 생각을 회사에서 잘 키워주지 못한다. 도전하지 않고 보신주의에 빠진 사회엔 미래가 없다. 저 같은 기성세대가 이런 사회를 만들었다. 도전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패기가 없다고 말한다. 패기가 없는 게 당연하다. 구조와 제도의 문제가 도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구조와 제도를 바꾸려면 정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조와 제도의 어떤 점이 문제인가.
▶제도는 항상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간다. 옛날 제도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평가할 순 없다. 기존 제도의 틀만 가지고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안 되는 것만 정해놓고 나머진 알아서 하도록. 동시에 잘못에 대해선 명확하게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중요한 게 아니다. 네거티브 규제와 징벌적 배상이 함께 가야 한다.

-구조와 제도의 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규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안전, 생명, 환경 등과 관련된 규제는 강화하고, 시대적 변화에 적용할 수 없는 규제는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동차 업체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수소차 개발에 나선 것처럼, 규제 재정비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
▶상당한 위기에 직면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생태계에 있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 등 제조 기업들은 이익이 나면 R&D(연구개발)하는 게 아니라 비용 절감만 추구한다. 일할 맛 나는 사회가 되려면 고생했을 때 거둘 수 있는 성취가 보여야 한다.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일부 대기업들은 큰 이익을 내지만 중견기업들은 굳이 성장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
▶전 세계에서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낙수효과로 대표되는 기존의 발전 방식으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존재한다. 패러다임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은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성과를 낼 순 없다. 고쳐 가면서 추진하다 보면 세상이 바뀐다.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성은 맞고 시도 자체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급했다. 빠르게 성과를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순서가 꼬인 부분이 있다. 보여주기식이 된 측면이 있으나,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경쟁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다. 기초생활수급제도, 국민건강보험 등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문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경쟁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퍼질 것이다. 결국 불평등을 심화할 수밖에 없고, 불특정다수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의 '로봇세' 도입 주장도 불평등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다. 혁신을 추진하되 혁신의 결과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금융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열어준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아직까지 금융소비자보호법이 통과되지 않아 아쉽다.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과 파장을 세심하게 보완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했다.
최근 라임 사태의 대책으로 사모펀드 투자 규모(최소 투자 규모 증액)를 올리려고 하는데, 이 조치로 자산운용업계가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 규제의 축이 왔다갔다하면 자본시장이 성장할 수 없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솎아내되,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해야 한다.

-수백억원이 될 수 있는 카카오뱅크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 같다.
▶스톡옵션을 받을 때부터 아내에게 '우리 돈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물려줘 봤자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나중에 사회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정치 입문을 결정하는 데 변수가 되지 않았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군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의 기반을 다진 업적 때문이다. 당시 지지자들의 비판, 반대 진영의 색깔론을 딛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4대 보험 등 기틀을 마련했다.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의 성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복지정책의 대상이 차상위계층까지 넓어졌다. 어떤 정책도 갑자기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천천히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제도화된다. 김 전 대통령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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