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하루 매출 500원"…中 유학생 사라진 황량한 대학가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오진영 인턴기자 2020.03.01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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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고려대 참살이길 인근 한 식당가의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손님이 없어 텅 비어있다. /사진=강민수 기자27일 고려대 참살이길 인근 한 식당가의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손님이 없어 텅 비어있다. /사진=강민수 기자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27일 오후 7시에 찾은 건국대학교 인근 양꼬치골목은 한산했다. 한창 인파가 붐빌 시간대인데도 오가는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이곳의 한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이모씨(60)는 "이래서는 월세도 안 나온다"고 호소했다. 서른세 개 테이블 가운데 손님이 있는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이씨는 "본래 일 매출이 50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50만원도 안된다. 직원 12명 중 2명만 나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쉬게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강 연기와 소비 위축으로 서울 대학가 인근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큰손이었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취를 감추며 살림살이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난 27일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중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은 서울 시내 주요 대학가 5곳을 직접 찾았다. 이들 학교의 중국인 유학생 수는 2~3000명에 이른다. 주요 손님이던 중국 유학생이 사라진 대학가는 황량했다.

"하루 매출 500원"…자취 사라진 中유학생에 쪼그라든 상권
27일 오후 건국대 양꼬치골목의 한 대형 식당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한두팀 빼고 손님이 거의 없어 비어있다. /사진=강민수 기자27일 오후 건국대 양꼬치골목의 한 대형 식당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한두팀 빼고 손님이 거의 없어 비어있다. /사진=강민수 기자


머니투데이가 방문한 대학가 인근 식당이나 상점은 대부분 아예 비어있거나, 고작 손님 한 두 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휴업에 나선 가게도 적지 않았다. 서강대학교 인근에서 프린트 가게를 운영하는 B씨 또한 "하루에 매출이 500원 미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월세나 전기료가 아까워 운영하기는 하지만 열수록 적자인 것 같다"며 "내일은 닫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후문 앞에서 감자튀김집을 꾸린 정모씨(42)는 "이달 초까지는 드문드문이라도 손님이 왔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며 "명륜시장(성대 후문 쪽) 대부분 상가가 일찍 문을 닫거나 휴업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희대 부근에서 중국식품점을 운영하는 C씨는 "장사가 안돼 아르바이트생에게 당분간 쉬라고 이야기했다"며 "데리고 있으면 너무 어려워 어쩔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상인들은 유독 중국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많게는 매출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던 중국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며 대학 상권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건국대 근처 대학가에서 샌드위치집을 운영하는 이모씨(50)는 "예전에는 중국인 학생이 하루에 10명 이상은 왔는데 요새는 많아야 한두 명에 불과하다"며 "1월 말 이후 피해를 줄까 봐 더욱 안 나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참살이길에서 부대찌개집을 운영하는 50대 김모씨는 "손님 가운데 중국인이 못해도 열 명 중 네 명은 됐는데 지금은 한 명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전체 손님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부동산에도 발걸음 "뚝 끊겨"…"신축은 늘었는데 학생은 없다"
27일 오후 건국대 인근 상점 거리의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강민수 기자27일 오후 건국대 인근 상점 거리의 모습. 저녁시간대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강민수 기자
새학기를 앞두고 가장 바빠야 할 부동산 공인중개사들 역시 "학생들 발걸음이 뚝 끊겼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대학교 개강이 2주 연기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유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려대 인근에서 47년 동안 공인중개업을 해온 김영기씨(77)는 "보통 이맘때는 하루에 5~6건 이상 학생들이 집을 보러 왔는데, 20일 넘게 1명도 안 왔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정문 앞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박모씨(63) 또한 "개학이 연기되는 것이지 아예 취소된 것은 아니라서 물량에 크게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혀를 끌끌 찼다.

중국 유학생이 차지하던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인다. 성북구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A씨는 "처음에는 임대인들이 중국 학생을 거부하다가 요즘엔 오히려 중국 학생들이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입국 절차도 까다로워진 데다 최근 한국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한국 유학을 포기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최근 대학가에 신축 건물이 늘며 원룸 공급량도 많아졌는데, 중국 학생들이 안 들어오면서 학생 수는 오히려 줄다 보니 수요는 쪼그라든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어려움은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학생 관리' 고심 중인 대학…한국 위험하다며 되려 中 가기도
 내달 대학 개강에 맞춰 입국한 중국 유학생들이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학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내달 대학 개강에 맞춰 입국한 중국 유학생들이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학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은 68개 대학교 3만8330명에 달한다. 이들 중 1만7000여명이 입국 예정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대학들도 중국 유학생 관리에 고심 중이다. 성균관대학교는 최근 14일 이내 중국에 다녀온 학생들에게 1인 1실을 배정하고 기숙사 격리에 들어갔다. 중앙대학교는 별도로 분리된 기숙사를 운영 중이며, 서울대학교는 14일간 후베이성에 다녀온 학생들의 등교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고려대학교 또한 오는 3월 3일 이후 중국인 유학생의 기숙사 입사를 금지했다.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오히려 중국인 유학생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생겼다. 중국인 유학생 출신으로 중국인 대상 전문 유학원 SKY유학센터를 운영하는 강진씨(26)는 "부모님의 권고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휴학하는 학생이 급격히 늘었다"며 "1월 말 개강하는 수업 인원이 17명인데 2월 중순이 되니 3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어학원 평균 환불 요청은 50%에 이른다"고 했다.

건국대에 재학 중인 유학생 완원철씨(24)는 "막 학기를 앞두고도 중국에 돌아가겠다고 한 친구도 있다"며 "중국인 유학생 지인 가운데 다섯명 중 한 명은 휴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지난 22일 마감된 이 청원에는 76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지난 22일 마감된 이 청원에는 76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인 입국금지 등 중국인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도 한몫한다. 완씨는 "부동산에 가면 아주머니가 중국 학생이라고 들은 후 방이 없다고 하면서 마스크를 꼈다는 지인의 경험도 전해 들었다"며 "카페에서도 중국말이 들리면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마스크를 끼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강씨는 "틱톡 등에 보수집회의 중국인 혐오 발언을 담은 영상 등이 퍼지며 한국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만 타도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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