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 '극저온'서 더 강한 '엔트로피 합금' 비밀 풀었다

머니투데이 대전=허재구 기자 2020.02.2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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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결함에너지'원인 규명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면 로봇에 액체질소를 부어 얼린 후 총을 쏴 산산이 부숴버리는 장면 나온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금속이 저온에서 충격에 약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 오히려 극저온에서 충격에 더욱 강한 일명 '엔트로피 합금'이 네이처(Nature)지에 보고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마침내 국내 연구진이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엔트로피 합금'이 저온에서 더욱 강한 비밀은 낮은 적층결함에너지에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진은 실증 연구를 통해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산업에서 흔히 쓰이는 스테인리스강 대비 45%에 불과, 일반적인 금속과는 달리 저온에서 충격에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원 주도 하에 지난 2014년부터 국내·외 총 7개 기관 및 9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의 지난 1월호에 게재됐다. 게재 후 한 달여 만에 전 세계적으로 600회가 넘는 논문 다운로드 횟수를 보이며 학계와 산업계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D 프린팅법으로 제작된 시험용 엔트로피 합금(사진 왼쪽)과 시험 중인 엔트로피 합금(사진 오른쪽)./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3D 프린팅법으로 제작된 시험용 엔트로피 합금(사진 왼쪽)과 시험 중인 엔트로피 합금(사진 오른쪽)./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일반적으로 금속은 바둑판 같은 격자구조의 점에 원소가 박혀 있는 결정구조를 이룬다. 이런 금속에 힘이 과도하게 가해지면 규칙적이던 원소배열의 격자구조가 깨지면서 불규칙한 적층결함(stacking fault)이 생긴다. 이 때 필요한 에너지를 '적층결함에너지'라고 한다.

'엔트로피 합금'과 같이 적층결함에너지가 낮은 금속은 힘이 가해질 때 원소배열이 대칭적으로 놓이는 쌍정변형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쌍정변형을 거치면 금속 내 입자 크기가 더 작아져서 단단해지고 충격에도 훨씬 강해진다.

연구진은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가 낮고, 이로 인해 저온일수록 쌍정변형이 더욱 쉽게 나타나 충격에 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규명해 낸 것.

이번 연구 성과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해외에서 가동 중인 첨단 중성자과학연구시설을 활용,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에너지를 더욱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에는 전자 현미경으로 일일이 관찰하면서 에너지를 측정했는데 이때 소재를 절단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실험적 오류가 발생했다. 또 한 번에 머리카락 굵기(100 마이크로 범위) 정도의 작은 부분만 관찰할 수 있어 실험 결과가 불완전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중성자 빔을 이용해 원자보다 큰 밀리미터 단위 크기의 소재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었다.

또 실시간(in situ)으로 변형 중인 소재를 측정하면서 변형 공정 중의 결함 변화를 측정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100여회 이상의 반복 실험으로 얻어낸 변형 순간의 에너지 변화 데이터를 확보해 실험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이 연구원의 우완측 박사(양자빔물질과학연구부)는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연 3조원 규모의 국내 극저온 밸브, LNG 저장탱크 및 액체수소 저온탱크 시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약 50조에 달하는 극지 해양플랜트 소재부품 사업과 우주·항공, 수소자동차 등의 첨단 미래 에너지 소재분야 등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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