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SBS '하이에나'
그런 윤희재를 상대하기 위해 흙수저 출신 정금자가 꺼내든 카드는 ‘위장’이다. 윤희재가 자주 가는 빨래방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쌓은 후,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슬쩍 흘려 환심을 사고, 상대가 떡밥을 물자 슬쩍 사라지는 수법으로 마음을 애끓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짠 하고 나타나 ‘너에게 이러는 여자는 내가 처음’이란 고전적 수법을 활용해 마음을 낚아채는 작전.
자의에 의해/타의에 의해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악연은 경쟁으로 엮인 관계로 인해 사사건건 부딪친다. 변수는 감정의 찌꺼기들. 윤희재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처음 만날 땐 서로 손을 맞잡아야 관계가 시작되지만 헤어질 땐 한쪽만 손을 놓아도 끝나는 거야”라고 냉정하게 말하지만, 금자와의 관계에서 맞잡은 손을 거부당한 건 바로 그다. ‘내 뒤통수를 쳤으니까 복수해야지’라는 정금자를 향한 희재의 다짐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녀에게 준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배신감 때문인지, 스크래치 난 자존심 때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종종 흔들리는 희재. 급기야 의뢰인에게 협박당하는 정금자에게 “양아치, 칼빵 조심”이라는 카톡을 보내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안절부절못해하며 사라지지 않는 카톡 ‘1’에 집착한다. 한번 발을 들인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머리카락에 붙은 껌딱지처러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 잊었다 방심했을 때 기습적으로 떠오른 것. 희재에 반해 정금자의 감정은 아직 단호해 보인다. 두 사람의 경쟁에서 금자가 우위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건 이 때문이다. 사랑학개론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이므로.
사진제공=SBS '하이에나'
다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흥미로운 정금자와 윤희재 캐릭터는 막상 함께 있을 때 예상만큼의 폭발적인 케미를 아직 보여주지는 못하는 인상이다. 단순히 주연 남녀의 실제 나이 차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방송 전 공개했던 포스터에 그토록 눈길이 갔을 리 없다. 싸우는 듯 사랑하는 듯, 닿을 듯 말 듯, 포스터 속 두 배우가 자아낸 짜릿하고도 아슬아슬하게 섹시한 분위기 말이다. 그러니까 포스터에서 감지됐던 두 인물의 폭발적인 케미가 아직 방송에서는 실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초반 설정의 허약함에서 기인한 면이 있다.
즉, 윤희재가 정금자에게 빠져들어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의 개연성이 아무리 봐도 빈약하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사랑에 한 눈이 팔려 중요한 정보를 흘리게 된다는 설정 역시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두 사람이 ‘꽁냥꽁냥’하는 초반 장면들이 낯간지럽게 느껴진다면, 이는 배우 합의 문제라기보다 두 캐릭터가 그렇게 보일 만한 합당한 사연을 충분히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야 겨우 삽을 뜬 드라마이기에 유보적 입장이지만, 아직 ‘하이에나’엔 작가 개인의 참신한 문법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법정물을 표방한 캐릭터물”이라고 밝힌 제작 의도에 부합하게 배우 개개인의 독자적인 매력이 극 깊숙이 침투해 있고, 당하기만 하던 윤희재의 각성과 함께 이들의 매력이 전진해 나갈 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스타트다. ‘쩐의 전쟁’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 등에서 확인한 장태유 PD의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편집의 묘미와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카메라 역시 초반부의 몇몇 내러티브 구멍을 막아내며 앞으로의 극적 재미 확장 가능성을 도모하는 느낌이다. 판은 깔렸고, 두 하이에나의 으르렁 싸움도 본궤도에 올라왔으니, 이제 신예 김루리 작가가 보여 줄 차례다.
정시우(칼럼니스트,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