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정국과 박막례 할머니의 교집합은?

양현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2.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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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전성시대의 필살기는 내 이야기!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그까짓 게 뭐라고!”

요즘은 어딜 봐도 ‘콘텐츠’ 판이다. 동네 빵집 광고를 할 때도 콘텐츠가 중요하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이제 중고등학생이 선망하는 유망 직업군으로 뒤바뀐 지 오래다. 콘텐츠 제작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등장했고, 이미 스타가 된 유치원생 유튜버 스타도 존재한다. 아이돌,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각계각층의 인플루언서들까지 가세하며 이 판은 더 화려하고 풍성해졌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방탄소년단 정국은 스스로 촬영한 필름 콘텐츠를 만들고, 배우 이하늬는 유튜브 채널을 따로 개설해 여배우의 생생한 민낯을 보여준다. 최근 JTBC에서 시작된 예능 ‘우리, 사랑을 쓸까요?-더 로맨스’(이하 더 로맨스)에서는 스타들의 웹드라마 콘텐츠 제작기를 작정하여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콘텐츠 전쟁이 시작된 거다.

콘텐츠란 사전적 의미로 컴퓨터 인터넷이나 통신 등을 통하여 제공되는 각종 정보나 내용물을 음향, 이미지, 영상 등의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 유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콘텐츠 산업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기하급수적인 성장과 더불어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시장이 되면서 급부상했다. ‘먹방’과 ‘뷰티’ 양대산맥으로 키워진 1세대 콘텐츠 시대에 다양한 직군의 다채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며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로 도래한 것. 특히나 연예인과 각종 스타플레이어의 합류는 예전 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불었던 벤처 바람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산업적 측면의 비약적 성장을 기록케 했다.

이랬던 콘텐츠 시장은 박막례 할머니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유명세를 앞세운 연예인들의 채널과 자극적이고 화려한 콘텐츠 사이로 손녀가 만든 할머니의 즐거운 인생 유랑기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이게 가능한 건 “추억은 돈으로 사는 거여”, “이쁜 것은 눈으로 보일 때 사야 돼” 등 듣기만 해도 사이다를 원샷한 것 같은 박막례 할머니의 삶에 대한 애티튜드 덕분이다. 인터넷에서 최고의 명언으로 회자 되는 “내가 70년 넘게 살아보니께, 남한테 장단 맞추지 말어. 북 치고 장구 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이 말은 그녀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가장 뛰어난 공감을 불러일으킨 거고.

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방탄소년단 정국이 만든 G.C.F(Golden Closet Film) 콘텐츠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 중 하나다. 해외 촬영이나 개인 일정 틈틈이 촬영한 영상을 직접 음악과 함께 편집해 한 편의 필름처럼 만들어 이를 연작 시리즈로 내고 있다. 이 콘텐츠를 팬들이 좋아하는 이유엔 영상 자체의 퀄러티도 그러하지만, 가수 정국이 아닌 스포트라이트 꺼진 이후 청년 전정국의 시각이 담겨있어서다. 4분가량의 영상엔 이국의 풍광이 일상의 단면에 빗대어 담겨있다. 하늘, 바다, 조용한 공원, 날아가는 새. 정적이고 고용한 일상 속에 가끔 같은 그룹의 멤버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필름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순하다. 화려한 수사나 특별한 장치 없이, '청년 전정국'이 보는 일상을 공유함으로 그는 팬들과 소통하길 선택한 거다. 유튜브 채널 속 이하늬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이런 거다. 민낯으로 시상식 드레스를 고르는 상황에서 핑크색 드레스 지퍼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니 “내가 어제 회식을 괜히 했지?”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이는 순간.

결국 콘텐츠의 힘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는 곧 그 사람이다. 자극적인 소재, 화려한 편집이나 영상 기술에서 사람은 공감을 얻는 게 아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의 수상 소감으로 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결국 핵심이 나, 자신의 이야기란 거다. 아직 웹드라마 시놉시스의 방향조차 잡지 못해 헤매던 ‘더 로맨스’의 김지석이,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유인영에게 결국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단 말야”하고 고백한 순간, 이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가 반짝인다. 덧붙여 이 웹드라마가 그려낼 뻔하지만 뻔하지 않을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졌고.

지난 24일 열린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발매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리더인 RM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우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가 온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지닌 보편성이 공감의 성격을 띠게 될 때, 그 콘텐츠는 어마어마한 힘을 얻는다.



결국 콘텐츠란 스토리텔링이고, 화자가 주인공인 일종의 모노드라마인 셈이다. 만일 당신 혹은 당신의 자녀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길 바란다면, 코딩이나 편집 기술을 배우는 게 최상의 선택은 아닐 거다. 각자의 삶, 나의 이야기가 먼저여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을 좀 컨닝할 필요가 있다. “염병하네. 70대까지 버티길 잘했다!” 그 한마디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슈퍼스타가 흔한 건 아니거든.

양현진(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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