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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충무로의 희망인 이유!

최재욱 기자 ize 기자 2020.02.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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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사태로 흥행성적 아쉽지만 호평 이어져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운이 없어도 어떻게 이리도 지지리 없을까? 언론·평단뿐만 아니라 실 관람객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탄탄한 완성도와 영화적 재미로 호평을 받으며 개봉 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위의 위로를 받는 영화가 있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이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돼가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주말 내내 흥행 정상에 올랐지만 누적 관객 수는 겨우 36만9,780명. 평상시 흥행 1위작 주말 하루 스코어에 가깝다.

코로나19가 제한적 전파 상황에서 지역사회 전파 및 전국적 확산으로 가는 분위기여서 앞으로 흥행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작들이 속속 개봉 연기를 발표해 경쟁자가 늘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확진 환자수가 계속 늘어나는 중이어서 전체 관객 수가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해 손익분기점인 240만명을 맞추기도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관객만 좋아하는 작가주의 취향 영화가 아니라 상업적인 메리트를 충분히 갖춘 대중적인 상업영화여서 제작진의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일본 작가 스네 게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마지막 기회로 보이는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사투를 담은 범죄극.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윤여정, 신현빈, 정가람 등 충무로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신구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제작 전부터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개봉 전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언론 시사 후 호평이 이어져 흥행 청신호를 켰지만 지난달 말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공포가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사실 잘 만든 영화들이 모두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관객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흘려보내기엔 아쉬움이 크다. 좀 더 많은 칭찬을 받아야 한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우선 가장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은 직접 원작을 각색까지 한 김용훈 감독. 신인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연출력을 선보인 김감독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희열이 엄청나다. 관객들이 범죄극 장르에서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만족시켜준다. 감독이 스크린 위에 뿌린 퍼즐 조각들을 맞추다 사건의 전말에 가까워지면 아찔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요즘 충무로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상업적인 장점까지 살릴 수 있는 신인감독을 만나는 게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힘든 일. 김감독은 일본적 색채가 들어있어 각색하기 매우 까다로운 원작을 노련하게 한국적으로 요리하며 자신의 재능을 과시한다.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감독의 뒤를 이을 만한 ‘대형 신인 감독’의 출현이다.

또한 진정한 ‘앙상블’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합을 보는 즐거움도 대단하다. 국내 시상식에 ‘앙상블’상이 생긴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듯하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톱니바퀴처럼 완벽히 맞물려 돌아가면서 영화에 가속도를 배가한다. 모든 캐릭터와 사건을 유기적으로 직조한 김용훈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지만 전도연은 ‘명불허전’이란 단어가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다.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는 충무로 영화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최고의 악인. 영화 속 서로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포식자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악랄하다. 전도연은 기대대로 연희 역을 맞춤옷을 입은 듯 강렬하게 소화해낸다. 영화가 끝난 후 잔상이 남을 정도로.


이렇게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현재 상황은 어둡다. 그러나 이 영화의 존재 자체는 역설적으로 충무로에 희망을 의미한다.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한 개성 없는 공산품 같은 기획 영화들에 지친 관객들에게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명배우들의 연기에 눈이 호강하고 끊임없이 추리하느라 머리가 바쁘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긴장감에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런 만족감은 최동훈 감독의 2004년작 ‘범죄의 재구성’, 2012년작 ‘도둑들’ 이후 처음이다.

아무리 그래도 코로나 19 환자가 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당장 보러 극장에 가라고 권할 순 없다. 모든 상황이 잘 마무리된 후 챙겨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제목과 감독 이름은 기억해두기를 바란다. 충무로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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