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만 국민청원에도 중국 항공편 제한 난처한 정부, 왜?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0.02.2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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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대학 개강에 맞춰 입국한 중국 유학생들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중국 전용 입국장에서 신원과 연락처 확인을 받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내달 대학 개강에 맞춰 입국한 중국 유학생들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중국 전용 입국장에서 신원과 연락처 확인을 받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24일 오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국민이 동의한 게시물은 지난 1월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으며 북한마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는데 춘절 기간이라도 한시적 입국 금지를 요청한다”는 내용에 76만명 이상 찬성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 이후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6회 이상 권고했다. 주 감염원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역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차원에서 운항 금지하면 외교관계 악화 우려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심각’ 단계에서 국토교통부는 항공, 철도, 버스 등 대중교통 종사자 및 승객(여행객)에 대한 방역과 운행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직전 ‘경계’ 단계까진 방역에 주력하나 심각 단계부터는 필요한 경우 항공편 등의 운항을 금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



문재인 대통령은 전일 코로나19 대응 수준을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하지만 정부는 중국인 입국 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중국발 항공편 제한은 여전히 검토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이와 관련 “항공 분야에서 정부가 직접 특정 지역 운항을 줄이기 어려운 이유는 외교적 문제 때문”이라며 “우리가 만약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면 국제사회가 중국의 의료체계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노선을 회복할 때 중국이 협조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미국 등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 코로나19 방역 효과를 낸 것에 대해선 “그런 지적도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는 좀 다른 것 같다”고 답했다.


중국이 내부 검역을 강화하고, 여행객이 감소해 한국 출국자 수가 줄어드는 점도 정부의 소극적 행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중국발 비행기 국내 입국자 수는 지난 1월 일평균 1만9417명에서 이달 5372명(23일 기준)으로 감소했다. 이달 중순부터는 입국자 수가 3000~4000명 선으로 더 줄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며 국내 항공사들이 대구~제주 노선을 감편 운항하거나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24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발 안내 전광판에서 대구행 비행기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사진제공=뉴스1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며 국내 항공사들이 대구~제주 노선을 감편 운항하거나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24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발 안내 전광판에서 대구행 비행기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사진제공=뉴스1
국내선 제한도 아직은 시기상조 판단…최종 결정은 중대본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단기간 급증한 대구 지역도 국내선 운항편을 제한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김 실장은 “대구, 경북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지금 상황만으로 대구발 항공편을 다 줄일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다만 민간항공사들은 수요 감소를 고려해 대구 관련 노선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추세다. 대한항공은 하루 2번 운항하던 대구~제주 노선과 1회 운항한 대구~인천(환승) 노선을 3월 말까지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대구~제주 노선을 내달 초까지 일시 중단할 방침이다. 일부 저비용항공사(LCC)도 대구를 오가는 국제선과 국내선 노선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분위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급감해서 예약률이 20% 미만인 데다 추가로 승객들이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운항을 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항공편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국토부의 운행제한 조치는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며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의 판단과 이에 따른 지침이 내려져야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전날 위기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높이면서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했다. 기존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는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대응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항공편 등의 운항 제한 조치가 발동되는 구체적인 기준(확진자, 사망자 수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대본의 판단에 달렸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소극적 행보에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초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방역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이유에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4일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인 입국 차단 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외신 질문에 “외교적인 부분을 감수하고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던 나라에선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더디다”며 “그때 조치하는 게 옳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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