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규제샌드박스?…원격진료·망분리 족쇄풀렸다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조성훈 기자 2020.02.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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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알서포트/사진제공=알서포트


'원격의료' '금융권 망분리' 등 찬반 논란 속에 좌절됐던 규제 장벽들이 코로나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계기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실효성만 검증된다면 완전 허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가 또다른 형태의 '규제 샌드박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21일 정부는 전화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의 의료기관 방문으로 인한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국내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시적으로 규제를 푼 것이다. 병의원에서 팩스로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 처방전을 전달하는 방식도 도입된다. 전화진료로 제한되긴 하지만 원격의료가 처음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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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부·한시 허용한 원격진료…의협 반발속
원격의료는 지난 20여년간 찬반여론이 충돌해온 뜨거운 감자다. ICT기반 진단시스템을 활용하는 원격의료는 환사와 의사가 거리나 시간적 제약을 넘어 의료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나아가 의료IT기술과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 등은 원격의료를 합법화하고 관련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있지만 국내에서는 의사협회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로 몇몇 시범사업을 한 게 고작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2010년 이후 수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상임위 문턱을 넘지못하고 폐기됐다.

의사협회는 여전히 오진에따른 법적책임 소재가 모호하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반발하지만, 코로나19로 만성 기저 질환자의 감염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서둘러 안착시켜야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있다. 실제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은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경북지역부터 전화진료와 원격처방에 나서기로 했다.


증권사 직원이 업무용과 인터넷용으로 이원화된 PC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김유경기자증권사 직원이 업무용과 인터넷용으로 이원화된 PC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김유경기자
◇금융위 비조치의견서…'망분리' 규제 '물꼬' 틀까

금융당국의 금융시스템 망분리 규제완화 조치도 기대감을 키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필수인력에 한해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비조치의견서를 전달한 것이다. 비조치의견이란 현행 규정상 원칙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으나 예외적 상황에서는 한시 허용하겠다는 뜻으로 사실상 망분리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앞서 망분리는 2011년 사상 초유의 농협전산망 해킹사고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해커가 외부망을 통해 내부시스템에 침투, 공격해 3일간 거래가 중단되면서 고객피해가 막대했다. 이에 당국은 2013년 금융회사로 하여금 내부 업무망과 외부인터넷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망분리'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후 획일적인 망분리 규제로 인해 외부시스템과 연계가 필수적인 최신 클라우드 기술이나 핀테크 활성화는 물론 각종 신규 고객서비스 창출을 가로막고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규제완화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금융회사의 전산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중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렇다할 대책이 없어서다. IT관리자나 개발자가 필요한 경우 자가격리나 재택근무를 해야하는데 망분리 규제로 회사외부에서는 내부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는 대체자원이 없는 필수인력의 재택근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상 첫 예외허용이라는 점에서 비조치의견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실제 키움증권과 키움자산운용은 재택근무시 본사에 있는 PC를 사용할 수 있도록 원격제어 솔루션 도입 검토에 나섰다.

키움자산운용 관계자는 "지난주에 발열환자 한 명이 발생하면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며 "혹시나 건물이 폐쇄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평상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본부별로 비상플랜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T업계에서는 이번 망분리 규제완화가 정부의 금융보안 정책기조에 새로운 전기가 될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초연결사회에서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망분리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해킹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데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 때문에 좋은 기술과 서비스, 아이디어들이 사장되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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