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재앙은 핵이 아닌 전염병”…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요원’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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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슈퍼버그’…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인류 재앙은 핵이 아닌 전염병”…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요원’


“글로벌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이를 반영하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현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03년 사스, 2012년 메르스 사태의 원인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라지기는커녕, 항생제를 비웃듯 변이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만큼 항생제도 그럴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는 미생물이 ‘슈퍼버그’다. 이 변이된 박테리아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한 수 위라는 얘기다.

슈퍼버그는 박테리아를 주로 얘기하지만, 치료제가 듣지 않는 진균도 포함된다. 지난해 20개국으로 퍼진 치사율 60%의 항생제 내성 ‘칸디다속 진균’이 대표적 사례다.



2016년 경제학자 짐 오닐은 ‘박테리아의 항균제 내성에 대한 검토’ 연구 후 “슈퍼버그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슈퍼버그로 인한 사망자가 3초당 1명이 될 것”이라고 충격적인 사건을 예고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7년 슈퍼버그 12종을 발표하면서 매년 70만 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고 있고 2050년에는 사망자가 연간 100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른 경제 피해액만 100조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미국질병통제센터는 매년 280만 명의 미국인이 항생제 저항 감염을 겪고 있으며 3만 5000명이 그로 인해 사망한다고 보고했다. 유럽질병통제센터도 매년 슈퍼버그 감염으로 사망하는 유럽인이 3만 3000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홍빈 감염내과 교수팀에 따르면 2019년 슈퍼버그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폐렴 등에 걸리는 사람이 9000여 명에 달하며 이 중 40%인 36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3년 사스로 인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774명, 2012년 메르스 사망자가 858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수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20세기 의학의 기적’이라 불리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병원균을 정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45년 노벨상 수상 자리에서 플레밍이 “너무 많이 사용하면 페니실린 내성균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 것처럼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테리아는 변이를 거듭해 인류가 사용하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며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현재 의료계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항생제가 197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대한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성. 환자들은 새로운 비싼 항생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고, 의사들은 기존 항생제를 처방하려는 경향이 맞물리면서 제약회사들도 항생제 개발을 주저하는 것이다.

설령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이 생긴 병원균이 등장해 투자비 회수를 어렵게 하는 것도 제약회사가 주저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그 원인의 중심은 상업적 농업의 확산에 있다. 인간은 동물의 생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가축들에게 무분별하게, 그리고 대량으로 항생제를 투여했다. 이에 박테리아들은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빠른 속도로 변이했고, 현재 그 서식지는 전 지구에 퍼져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슈퍼버그’와 현재 전쟁 중인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인 저자는 이러한 위급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현재 의료계의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박테리오파지와 여기에서 유래하는 리신 연구다.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바이러스인데, 이 방법은 바이러스에서 추출한 효소(리신)를 이용해 감염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자칫 위험해 보이는 이 리신 연구는 현재 항생제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 하나 소개되는 방법은 소위 유전자 가위라고 불리는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해 박테리아 내의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유전자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연구다. 여기에 최신 나노 기술을 활용해 병원균의 외벽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방법도 동원된다.

책은 항생제의 역사를 살피면서 21세기 지금, 어떻게 인류가 감염병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됐는지 보여준다.

◇슈퍼버그=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흐름출판 펴냄. 392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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