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격리생활 마친 우한교민 "오히려 밖이 더 위험"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20.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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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씨가 머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격리시설 /사진제공=홍윤표씨홍윤표씨가 머문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격리시설 /사진제공=홍윤표씨


#'드르륵 드르륵' 오전 8시. 구르마(수레)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밥이 왔구나." 마스크를 끼고 구루마가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인기척이 사라지면 문을 살짝 열고 앞에 놓인 도시락을 조심스레 집어 온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2차 전세기로 귀국해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격리 생활을 한 홍윤표씨(36)의 하루는 도시락 구르마 소리로 시작했다. 지난 16일 아산 격리시설에서 퇴소한 홍씨는 "도시락 구르마 소리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격리 생활을 떠올렸다.



2주 동안 나홀로 방에…시설 격리자의 하루

격리된 우한 교민에게 지급된 도시락, 가습기, 책, 여행책자 등. /사진제공=홍윤표씨격리된 우한 교민에게 지급된 도시락, 가습기, 책, 여행책자 등. /사진제공=홍윤표씨


아침을 먹고 오전 9시가 되면 체온을 확인해서 기록한다. 격리자는 격리기간 동안 아무도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오전 9시, 오후 5시 하루 2번 스스로 체온을 점검한다. 도시락 배급 직원이 떠난 후에 문을 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홍씨는 "도시락 배급 직원도 사람인데 격리자를 마주치면 당연히 불안하지 않겠냐"며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늘 주의하고 문을 열때는 항상 마스크를 썼다"고 말했다.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스마트폰과 TV로 세상과 소통했다. 지급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할 때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소식을 듣기 위해 늘 TV 뉴스를 틀어놨다. 함께 전세기를 나눠 타고온 1, 2차 우한 교민들과도 메신저로 늘 소통했다.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격리된 1차 교민들과 서로 시설이나 도시락을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가 되면 스피커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심리치료를 위한 명상 시간이다. 의자에 앉아서 '눈 앞에 초록색 나무가 있습니다'고 말하는 평온한 목소리를 들으며 안정감을 얻는다. 정부 통합심리지원단에 따르면 격리 교민 701명 중 32%가 우한에 두고 온 생업과 가족 걱정 등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식사, 심리치료, 체온체크 등 정해진 일과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더 느리게 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답답해서 운동을 하고 싶을 때도 층간소음에 주의해 스트레칭, 근력운동 등 조용한 운동만 했다. 홍씨는 "혼자 있으니 답답하긴 해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며 "자녀와 같이 생활하신 분들은 아이도 힘들어하고 층간소음도 신경쓰여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스 당시 중국 병원서 격리…"지옥같던 중국, 엄마보다 잘 챙겨준 한국"



격리된 우한 교민에게 지급된 샴푸, 내의, 커피포트, 마스크, 파스, 청소용품, 음료 등. /사진제공=홍윤표씨격리된 우한 교민에게 지급된 샴푸, 내의, 커피포트, 마스크, 파스, 청소용품, 음료 등. /사진제공=홍윤표씨
홍씨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 15일 동안 병원 독방에 격리 수용을 당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북경에 간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만성 편도선염 때문에 열이 나는 그를 방역복을 입은 이들이 사스 중증병동에 끌고갔다. 때마침 "열이 난다"는 중국어 표현을 배워 룸메이트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옥 같았다." 홍씨는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그는 "먼지가 넘쳐나고 더러운 시설에서 휴대전화도 뺏겨 연락두절된 채로 15일 동안 갇혀있었다"며 "사스에 감염된 게 아니란 건 알았지만 병원에서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유서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스를 경험한 홍씨는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돌기 시작하자 누구보다 먼저 대비했다. 물·라면 등 식량을 5개월치를 사놓고 지난달 22일부터 자가격리를 했다. 생업을 떠날 수 없어 우한에 남으려고 했지만 교민 인솔자를 해달라는 주우한총영사관 측의 전화를 받고 귀국을 결정했다.

홍씨는 "격리생활 하면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며 "엄마보다 잘 챙겨준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락 말고도 각종 간식, 특산물 등 지원품을 이곳저곳에서 보내주셨다"며 "교민들이 건의를 하면 즉각 요청을 들어주니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진천·아산 격리시설 교민에게는 △도시락·라면·과일·커피·차 등 식음료 △세면도구·청소도구 등 생활용품 △마스크·손소독제 △가습기 △스트레칭용 밴드 △의약품 △책 △심리치료용 마사지볼·컬러링북·색연필 등 각종 물품이 지원됐다.

"아산·진천 격리시설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 느껴…감사함 잊지못해"

아산에 격리됐던 우한교민들이 퇴소일 당시 버스에 붙여놓은 감사문. /사진제공=홍윤표씨아산에 격리됐던 우한교민들이 퇴소일 당시 버스에 붙여놓은 감사문. /사진제공=홍윤표씨
격리 교민들 사이에는 아산·진천 격리시설이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지역이라는 말도 나왔다. 홍씨는 "교민들은 우한이 어떤 상황인지 아니까, 오히려 밖이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퇴소할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 홍씨와 교민들은 그들을 배웅하는 경찰, 공무원 등에 90도 인사를 했다. 인솔 버스 앞에 '아산 멋져요,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도시락 구르마소리는 못 잊을 것 같아요', '모든 관계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등이 적힌 종이를 붙여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홍씨는 "찾아보니 아산에 좋은 곳이 많더라고요"라며 "앞으로 아산으로 휴가를 와야겠다, 무조건 아산"이라며 아산을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한국, 한 달 전 우한 떠올라…시민의식 없이는 코로나19 계속 퍼질 것"

지난 16일 오전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코로나19(신종코로나)사태로 인해 2주간 격리생활을 마친 2차 입국 우한 교민들이 퇴소하기 위해 버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 16일 오전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코로나19(신종코로나)사태로 인해 2주간 격리생활을 마친 2차 입국 우한 교민들이 퇴소하기 위해 버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2주 격리 생활을 마치고 나온 홍씨는 동탄신도시 부모님 자택에서 지내고 있다. 우한에서 한식당 2개 지점을 운영하는 그는 기약 없는 휴점에 걱정이 크다. 코로나19 사태가 더 길어지면 식당 1개점을 접을 각오도 하고 있다.

홍씨가 우한 거주지와 식당 2곳, 직원 10명의 기숙사비로 매달 내는 금액은 총 5만6800위엔(약 969만원)이다. 홍씨는 "중국 정부에서 월세 지원 대책 등이 나오지 않으면 가게를 일부 정리해야할 수도 있다"며 "일단 코로나19가 종결되고 정부의 결정을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씨는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퇴소 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다녀서 충격 받았다"며 "한 달 전 우한 시민들도 지금 한국처럼 마스크를 끼지 않고 편히 지내다가 열흘 후 지금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홍씨는 "한국에 계신 분들은 경험을 안해서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퇴소 후 지인을 만날 때마다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라고 강조한다. 시민의식만이 코로나19를 빨리 종결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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