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작부터 기택(송강호)의 아내 충숙(장혜진)은 “와이파이도 끊기고 계획이 뭐야?”라고 남편에게 따져 묻는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계획’은 단순히 오락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단계별 '계획'의 권력 과정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년에 이 대학에 꼭 갈 거예요.” 아들 기우의 한 마디에 아버지 기택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하고 응수한다. 피자 박스를 접으며 대충 하루를 사는 이들이 어느 날 ‘계획’이라는 걸 세우면서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 세계를 꿈꾸기 시작한다. 설사 그것이 편법이고 불법이라도 “우리도 부자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권력 진입을 시도한 셈이다.
② 권력의 획득…“계획이 있어야 해”

③ 권력의 착각…“이 집이 우리집이 된다면”
부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들은 ‘계획’이 잉태한 ‘권력 놀음’에 취해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정식으로 사귀자고 말할거야” 기정이 부잣집 친구 민혁의 ‘흉내’를 내고, “나는 괜찮더라. 다혜는 발랑까진 건 아닌 것 같고” 충숙은 이미 시어머니 행세를 하고 있다. 선(善)은 계층 이동과 권력 획득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이 돈이 나한테 있어봐. 나는 더 착하지.”(충숙) 기정이 부잣집 분위기랑 어울린다며 “이 집이 우리 것이 된다면 네 방은 어디 쓸거냐”고 묻는 기우에게 아버지는 “일단 우리가 살고 있잖아. 이게 사는 거지 뭐 별건가? 이게 우리 집이야”라고 답한다. “이 인간은 박 사장이 집에 오면 바퀴벌레처럼 숨겠지”하며 현실 자각 멘트를 날리는 아내에게 기택은 순간 ‘화’를 버럭 낸다. ‘내 권력을 비웃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듯.
④ 권력의 자각…“무계획이 계획”
4년 3개월 17일째 지하실에 생활하는 오근세를 만나기 전까지 기택 가족은 ‘계획=권력=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 가정부 문광(오근세 부인)을 다시 만나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기택 가족의 ‘계획’은 권력자를 속여 그 권력을 맛보는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기택이 오근세를 향해 “이런 데서 살아지나? 당신 계획도 없지?”라고 묻는다. 사업 실패로 빚쟁이에게 쫓겨 겨우 생존의 터를 마련한 오근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여기가 편해. 여기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나 여기서 계속 살게 해주쇼.”
계획은 있었지만,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벼랑 끝 삶을 살아야 하는 그가 선택한 건 “박사장, 리스펙트”뿐이다. 기택의 자각이 시작된 건 이때 즈음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오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계획은 순응과 포기, 기생보다 더 가치 없다는 사실을. 물난리로 체육관에 거처를 옮긴 상황에서 기택은 ‘아버지, 아까 그 계획이 머예요?“라는 아들의 물음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답한다.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오늘 체육관에서 다 같이 모인 게 계획을 해서 이뤄졌겠느냐. 계획이 없으니까 무언가 잘 못 될 일도 없고, 뭐가 터져도 상관 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든 나라를 팔아먹든 다 상관없다 이거야.”

오근세의 난동은 무계획을 계획으로 바꾸는 자들을 향한 경고이자 몸부림으로 읽힌다. 박 사장에 기생하며 사는 이들의 ‘편안한 무계획’에 ‘불안한 계획’을 획책하는 이들을 멈추겠다는 의지인 셈. 마지막까지 ‘박사장, 리스펙트’를 외치는 한 마디는 빈자들의 모든 비극과 무기력함을 함축하는 듯하다.
기택은 일을 벌인 후 대문을 나올 때 ‘기생의 이유’를 깨달았지만, 기우는 또다시 어느 날 다시 ‘계획’을 꿈꾼다. 이번엔 ‘근본적인 계획’이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 돈을 벌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엔 어머니랑 저는 정원에 있을게요.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판타지에 대한 정신 승리" VS "실패했지만 그래도 세워야"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빈자들이 어떻게 해 볼 요량도 없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의견도 있고, ‘계획’을 통한 꿈과 도전에 대한 희망 서사시라는 긍정적 시선도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삶’을 사는 이들이 영화에서 자기 주체적 계획을 통해 자아를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냉소적이고 비극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생각할 지점이 많다”며 “실제 현실에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부류는 부자들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기개발서 식의 책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처럼, 아들이 착란적 상태에서 계획을 다짐하는 것 역시 정신승리처럼 읽힐 수 있다”며 “그런 판타지를 놓지 못하고 염원하는 엔딩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고 해석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21세기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필연성과 우연성의 싸움”이라며 “영화에 나타난 폭력도 우연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은 계획이 우연의 순간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식의 교훈으로 기우가 다짐한 ‘근본적인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 메시지를 준다기보다 정당한 방식의 계획을 꿈꾼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계획이라는 것도 시스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갖는 것이고 없는 사람은 패배의식만 남을 뿐”이라며 “그럼에도 빈자들은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씁쓸하고 슬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