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도 제동을 걸지 않았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둔 신한금융 이사회에 법률적 리스크를 감안해 회장 인선을 해달라고 하면서도 이사회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습니다.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으면 경영진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적용해 조용병 회장이 연임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달라진 것을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실형은커녕 기소만 돼도 물러나야 했습니다.
신한금융 조 회장의 경우와 달리 금융감독원은 해외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징계에선 매우 단호합니다. 관련법을 무시하고 문책합니다.
은행 예금자산만 5억원 넘는 거액자산가들이 고객의 대부분인 실적배당 파생상품에서 손실이 났다고 금감원은 해당 은행장들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부자고객이라 해서 보호받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책임 아래 투자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금융상식입니다.
금감원은 손태승 우리은행장(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해선 예상을 깨고 문책경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은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의 제재 근거가 돼야 할 자본시장법은 배제하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끌어들여 내부통제가 미흡했다며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임이 불가능하게 되는 은행장 문책경고를 하는 과정에서조차 금융위원회가 배제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혁성향으로 문재인정부 국정철학에 충실하다는 윤석헌 원장이 초법적으로 행동한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여러 건이 있지만 대표 사례가 대법원 판결까지 나고 배상시효도 끝난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관련 기업 손실을 배상하라며 은행들을 압박한 일입니다.
손태승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싸우려면 신한금융처럼 사외이사들의 지지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이 다소 유동적입니다. 사외이사들을 추천한 우리금융 과점주주들은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등 금융사들이고 이들은 생리적으로 금융당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금감원은 은행장 선임을 강행하는 등 손 회장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1년도 더 지난 휴면계좌 비밀번호 무단도용 건을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리는 등 우리은행과 손 회장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마치 못된 검찰의 별건수사를 연상케 합니다.
금감원이 칼을 휘두르면 우리금융 과점주주도 사외이사들도 당사자인 손태승 회장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금감원이나 윤석헌 원장, 나가가 문재인정부도 많은 것을 잃습니다.
시장에선 요즘 ‘관치 리스크’가 너무 커 은행주는 가능하면 투자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금융 1대주주인 정부입니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당과 문재인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오로지 소비자보호만 외치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금 금융업을 망가뜨리고 정부·여당의 지지율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윤석헌 원장이 ‘무소주’(無所住)라는 말을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