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불법 낙인은 새로운 사업 하지 말란 얘기"

머니투데이 대담=임상연 미래산업부장, 정리 2020.02.17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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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정성인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벤촉법 시행, VC 전문성 중요..펀드 대형화 지원 필요"

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검찰이 ‘타다’ 불법서비스 혐의로 이재웅 쏘카 대표에게 실형을 구형한 것은 새로운 사업을 하지 말란 얘기와도 같습니다. 이건 사회적 협의로 풀어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취임 1년을 맞은 정성인 회장은 정부와 국회, 검찰을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M&A(인수·합병)와 관련해서도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배달시장을 통째로 판 것아다’ 등의 의견이 있는데 이는 ‘국수적인 생각’”이라며 날선 비판을 내놨다. 타다와 배민은 문재인정부의 혁신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지만 과도한 정치적 개입으로 신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안타까움의 목소리다.



올해 초 벤처캐피탈업계의 숙원인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촉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 회장은 벤촉법 시행을 계기로 국내 벤처생태계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민간 주도 벤처투자가 본격화하면서 앞으로 30~50년 이상 국내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기업)들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벤촉법이 공포된 지 하루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에 위치한 벤처캐피탈협회에서 정 회장을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 국내 벤처기업들이 나아갈 방향과 벤촉법 시행 이후 달라질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지난 10일 검찰이 쏘카 이재웅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습니다.
▶벤처케피탈이 투자하는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새로운 산업에 집중합니다. 새로운 산업은 기존 산업과 늘 갈등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안을 법원의 판결에 맡기다 보니 신산업을 ‘잘했다’ ‘잘못했다’ ‘맞다’ ‘틀리다’란 단순한 이분법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새로운 산업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선례가 남으면 앞으로 새로운 산업들도 같은 방식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경제와 사회는 ‘발전하지 않거나’ ‘혁명이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의 극단적인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산업을 법의 판결에 맡겨 칼로 싹둑 잘라내듯이 결정하는 건 문제란 얘기입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누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부나 국회가 조정해줘야 합니다. 조정기능을 위해 출범한 게 ‘사회적 대타협기구’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합의정신이 훼손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법원까지 간 케이스입니다. 사회적 대타협기구로 모든 사안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나 국회라는 컨트롤타워가 중재·조정역할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컨트롤타워가 올바른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배민이 독일 기업에 M&A된 것에 부정적 시각도 많은데.
▶‘외국 자본에 잠식됐다’, ‘국내 시장을 외국에 뺏겼다’ 등의 시각은 국수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대외개방형임에도 사고 인식의 틀이 너무 국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유니콘으로 성장하면 대규모 투자를 받기 힘들어집니다. 유니콘에 투자할 만한 국내 벤처캐피탈은 아직 드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투자를 받을까요. 유니콘처럼 사이즈가 큰 기업은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배민이 해외에서 투자를 받은 겁니다. 배민이 국내 돈은 싫고 해외 돈은 좋아서 투자받은 게 아닙니다. 순수한 경제논리입니다.


-벤촉법이 오는 8월 시행되면 어떤 변화를 예상하시는지.
▶벤처캐피탈의 전문성이 중요해집니다. 벤촉법으로 투자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바뀌면 벤처캐피탈들이 평판, 레코드(운용실적), 네트워크 등에 기반해 스스로 자금조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벤처캐피탈마다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느냐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벤처캐피탈들이 전문화하면 벤처투자시장이 커지면서 채권, 부동산보다 벤처 투자비중이 높아지고 해외자금도 유입될 것으로 보입다.

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전문성을 위해서는 인력양성 및 확보가 중요해지겠네요.
▶벤처투자 시장이 커지면서 전문인력도 자산운용에서 벤처캐피탈로 이동하는 추세지만 시장이 커지는 속도에 비해 전문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협회는 업계의 대표적 인력양성기관인 벤처캐피탈연수원을 지난해 독립시켰고 올해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벤처캐피탈 전문인력(심사역)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입니다.

-정부가 2022년까지 유니콘기업 30곳을 만들겠다고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정부의 벤처정책 가운데 크게 바뀐 것 중 하나가 유니콘 배출을 위한 스케일업(Scale-up) 육성입니다. 그간 창업 초기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며 ‘매출 1000억원 육성’이란 목표로 중견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지만 이후 더 큰 목표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해외에선 1조원 규모의 유니콘기업이 속출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제야 유니콘기업을 육성할 때가 됐다고 인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니콘기업 수는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 육성책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유니콘기업을 키우기 위해선 펀드의 대형화가 필요하겠죠.
▶그렇습니다. 야놀자, 위메프, 무신사 등 지난 한해 동안 5개 유니콘기업이 탄생했지만 유니콘기업의 상당수가 해외자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해 신규 결성된 벤처펀드의 평균 결성금액이 242억원으로 1000억원 넘는 펀드가 3개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니콘기업을 키워내기 위해선 5000억원 이상 펀드 대형화가 필요합니다.

-벤처투자시장 활성화를 위해 추가로 더 필요한 정책은.
▶앞서 말한 펀드 대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벤처캐피탈들이 민간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인력양성 등 인프라 지원, 세제혜택 등의 지원을 해야 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금껏 일을 잘해왔습니다. 하지만 벤처 영역이 커지면서 기존 다른 금융분야와 마찰을 빚어 동력이 예전보다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벤처 영역이 더 클 수 있도록 중기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더 강하게 해나가길 바랍니다. 특히 중기부가 이 시장을 제대로 육성하고 금융당국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중기부에 벤처캐피탈 별개 부서를 두고 전담인력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정성인 한국캐피탈협회장 머투초대석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중기부가 벤처투자시장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시나요.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벤처투자는 4조2777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모태펀드가 운용해 해산한 벤처펀드의 지난해 수익률은 6%에 달합니다. 더 투자해도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모태펀드는 수익성뿐 아니라 공공성도 함께 추구해야 하므로 정책자금을 벤처투자 시장에 더 배분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벤처버블에 대한 경각심도 있습니다.
▶또다시 ‘벤처버블’이 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2000년대 IT(정보기술)버블 사태 경험이 있어 ‘버블’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도 높습니다. 하지만 그때 버블은 벤처투자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유통시장의 버블이었습니다. 기업가치보다 턱없이 높은 주가가 벤처기업인들과 연루돼 각종 게이트가 터지면서 거품이 꺼진 것입니다. 이제는 코스닥시장을 ‘성장시장’으로 떼어내 독립운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닥시장을 2부시장으로 생각해 셀트리온, 네이버, 카카오 등이 코스피시장으로 이동한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미국 벤처기업들은 기업가치가 높아졌다고 다른 시장으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이제 코스닥시장도 실적 기반이 아닌 성장성 중심의 독립된 시장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별도시장’이 필요하단 얘긴가요.
▶‘별도시장’은 있는데 ‘별도운영’이 안되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스피·코스닥시장이 전문성 없이 얽히고설켜 운영됩니다. 운영주체가 같다 보니 코스닥시장이 코스피시장의 하위부서로 운영됩니다. 버블이 생기더라도 성장성에 기반한 ‘별도운영’을 할 수 있는 시장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네이버, 셀트리온만 보더라도 당시 버블을 만회하고도 견실히 성장하고 있지 않나요.

-올해 신규 벤처투자 전망은.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에서는 4조6000억~4조7000억원을 내다보는데 벤촉법 시행 등으로 민간영역에서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벤처캐피탈업계는 5조원 이상 내다봅니다. 무엇보다 벤처붐을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올해 협회장으로서 벤처투자 5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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