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하버드에선 포닥이 경쟁력"…90년생 과학자들의 수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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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연구자 좌담회]

편집자주 세계적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26세에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피터 힉스 박사는 36세에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밝힌 최초의 논문을 냈다. 이처럼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선 신진 연구자 육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 회의실에 모인 이겨레·김나연·조유진·김주화 네 사람의 공통 분모는 ‘90년생’, 우리 사회 주류가 될 이른바 ‘밀레니얼(millennials,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다. 이들의 대표적 특성이라면 의사 표현이 분명한 데다 공평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는 것. 반면, 고용 감소와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안한 청춘들’이기도 하다. 정부가 올해 젊은 과학자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 새로운 지원방안 마련에 본격 나선다. 그들에게 지금의 과학기술 정책·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지원을 원하는 지 물었다.

(왼쪽부터)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학박사),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농학박사),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학박사),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사진=이동훈 기자  (왼쪽부터)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학박사),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농학박사),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학박사),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사진=이동훈 기자


◆참석자(가나다순)

△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학박사)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학박사)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농학박사)

-아직 불안정한 지위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이겨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연수연구원(이하 이 연구원)=2년차 포닥(Post doctor, 박사후연구원)이다. 교수님의 연구비 상황에 따라 (고용 여부가)유동적이어서 박사후연구원 기간을 최대한 짧게 가져가려는 친구들이 많다. 분야마다 다른데 우린(실험물리학과) 짧으면 약 2~3년이고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친구들은 대략 5~10년 정도 한다.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하 김 교수)=아무래도 성과 위주다 보니 연구비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이하 조 기사)=생명공학연구원의 직급은 연구원, 기술원, 연구기사로 나뉜다. 연구기사는 연구도 하면서 기술자 일도 함께한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작년 1월 1일부터 연구기사로 근무하게 됐다. 비정규직이란 불안감을 없애고 싶어 하향 지원했다. 연구기사도 논문을 내고 전문 경력을 쌓으면 직급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연구원이 되려고 일단 연구기사로 입사했다.

-연구비를 원하는 만큼 주겠다면 얼마나 받고 싶나.
▶이 연구원=1년에 100억 원, 기초과학연구원(IBS) 수준으로 지원 받고 싶다. 사실 연구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쓰다 보면 언제나 적다. 예를 들어 1억, 2억, 3억짜리 연구장비가 있으면 (연구비를 고려해) 1억짜리를 산다. 이거(1억 원대 장비)보단 저거(3억 원대 장비)면 훨씬 더 훌륭한 연구성과가 나오는 거 알지만, 예산을 초과할 수 없으니 아쉬움을 안고 보다 싼 걸 산다. 우리 연구실은 주로 광학을 다뤄 레이저 관련 연구장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레이저가 천차만별이다. 레이저 포인트가 어떤 건 몇 억 원씩 한다.

△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김나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중개의학분자영상연구소 연구교수(이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김 교수=지금은 1년에 1억 원 정도 받는 데 20억 원 정도 받으면 좋겠다. 나는 주로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개발한다. 장비보단 새로운 의약품의 품질을 분석을 하는데 필요한 시약이나 전임상(동물실험)용 마우스(실험용 쥐) 등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조 기사=연구비 사용에 있어 부탁인데 연구비 총금액에서 구간별 장벽을 허물었으면 좋겠다. 이런 거다. 현재는 재료비 얼마, 연구활동비 얼마로 각각 정해놓고 쓰게 돼 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면 시약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면 학회 갈 연구활동비용으로 재료를 더 구매하면 된다. 이렇게 연구비를 보다 유연하게 돌려쓰면 좋겠는 데 (연구비 집행규정상) 그게 안 된다.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이하 김 사무관)=그런 것도 알아서 내부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고 있다. 또 물리는 이론을 하는 쪽(이론물리학)과 장비를 하는 쪽(실험물리학)에서 필요하다는 금액이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분야마다 연구의 특성이 달라 2022년부턴 분야 별로 연구비를 차등 지원할 수 있도록 학회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올해 자유공모 기초연구 총 사업 규모가 2조 원으로 늘었다. 젊은 과학자들이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차츰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욕구가 높다던데 ‘주52 시간제’ 어떻게 생각하나.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농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조유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연구기사(농학박사)/사진=이동훈 기자
▶이 연구원=연구를 하다 보면 여러 날 밤 샐 정도로 집중해서 해야 할 순간이 있다. 그런데 주52 시간제로 옭아매면 기관이나 연구자 개인에게 난처한 경우가 생긴다. 연구자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연구니까 각자 알아서 조정한다.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필요한 제도가 아니다.

▶김 교수=연구는 필요하다면 밤이 됐든 주말이 됐든 하는 것이다. 대학에 있다 보니 자신의 실험일정에 맞춰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조 기사=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배양액을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도 갈아줘야 하는데 너무 간단한 작업이라 근무시간에 넣기가 애매하다. 저녁 9시에 갈아주기 위해 퇴근 시간 6시부터 남아 있다 그 일만 잠시 하고 나온다면 3시간을 근무한 게 된다. 시간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연구직의 특수 상황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 연구원=적어도 연구 분야에선 말이 안 된다. 이 분야 사람이라면 이력서에 가릴 것 다 가려도 누가 누군지 대번에 다 안다. 제 생각엔 블라인드 보다는 일정 기간 채용했다가 잘하면 채용하고 못하면 내보내는 방식이면 좋겠다. 그래야 기회도 더 많아지고 자리도 더 많이 돌 수 있다. 대학에선 채용 관행을 속된 말로 ‘주차장’이라고 표현한다. ‘티코가 먼저 대면 벤츠는 딴 자리 찾아야 한다’는 농담을 한다. 누구나 탐내는 실력이 월등한 교수가 있다 해도 그 과, 그 자리에 자질이 형편없는 교수가 먼저 뽑히면 그걸로 끝이라는 얘기다. 순서상 첫 번째라서 운 좋게 임용된 분은 좋겠지만, 우리가 볼 땐 불공평해 보인다. 그래서 다들 테뉴어(정년보장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평성을 목적으로 한 제도(블라인드 채용제)라면 처음에 뽑는 것보다 중간 점검 과정을 가져 전체적으로 기회를 더 늘리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조 기사=국내 학회만 가봐도 매년 보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서로 모를 수 있겠나. 인터넷에 이력 관련 단어 2개만 넣어도 블라인드 채용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떤 논문을 썼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미국처럼 자신의 추천인을 3~5명 정도 적도록 해 그들(추천인)들로부터 그(입사지원자)가 어떤 연구실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는 게 더 공평하고 투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입사 땐 대학 석사까진 어느 대학을 나왔나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박사 학위 이상이면 어느 대학을 나왔나 보다 어떤 내용이 담긴 논문을 썼나가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블라인드 채용제는 의미가 없다. 저는 1~2주라도 함께 실험에 참여하는 형태의 ‘실습 면접’을 제안해 보고 싶다. 하루만 함께 실험해보면 그가 어떤 지 다 알 수 있다.

-구글처럼 전 세계 엘리트들이 선망하는 기업에서 수백억원대 연봉을 제시한다면.
▶이 연구원=그래도 안 간다. 제 위에 헤드(관리책임자)가 있는 것을 안 좋아한다. 원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학에 어떻게든 남고 싶다. 지금 함께 연구하는 교수님은 저보다 10살 많다. 최근 물리학과에 상당히 젊은 교수님들이 대거 들어오셨는데 말도 잘 통하고 연구도 잘 이끌어주신다.

▶조 기사=연봉에 따라 움직이기보단 제가 그 자리로 옮겼을 때 어떤 위치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정부에 건의할 내용이 있다면.
▶이 연구원=두 달 정도 보스턴에 파견 갔을 때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하버드대 연구실에 대학원생 보다 박사후연구원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아이디어가 잘 나오는 환경이었고 연구 진행 속도도 매우 빨랐다. 연구실에 근무 중인 박사후연구원들이 경쟁력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연구할 분위기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사진=이동훈 기자  김주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 기초연구진흥과 사무관/사진=이동훈 기자
▶김 교수=하던 연구가 끊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연구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실상 1~3년의 연구로 성과를 내기란 어렵다. 또 3년 과제가 끝나면 후속연구로 더 발전시켜 나가야 목표한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중견 연구자로 성장해 자리를 잡기 위해서라도 한 주제의 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게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조 기사=대학이든 연구소든 주니어급 연구원들이 갈만한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연구교수, 박사급 연구원들도 정규직으로 랩(연구실)보다는 학과에 소속돼 일을 한다면 박사초년생 훈련 등 전문인재 양성 측면에서 얻게 될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김 사무관=올해부터 박사후연구원이 연구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해 원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세종과학 펠로우십’이 처음 시행된다. 연구비와 인건비를 연간 200명씩 5년간 1억원 내외를 지원하고 연구기관에 맞춰 간접비도 별도로 지급할 계획이다. 박사후연구원등 미래 과학자가 될 제또래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많은 기획이 현재 진행중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모두 담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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