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오지랖에 쿠팡 '정기배송' 접을 뻔?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0.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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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판촉행사는 임시적·탄력적이어야"

쿠팡이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유아동 정기배송 베스트 아이템 100 기획전'을 알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쿠팡이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유아동 정기배송 베스트 아이템 100 기획전'을 알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주부 A씨는 '정기배송' 때문에 쿠팡을 이용한다. 갖난아이 키우면서 대형마트 한번 가기 쉽지 않다보니 쿠팡 정기배송만큼 편리한 게 없다. 주문 한 번으로 아기 기저귀, 휴지, 생수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고, 가격도 할인되기 때문이다. A씨는 "쿠팡 정기배송없이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쿠팡의 정기배송은 과거 한차례 '위기'를 겪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정기배송을 '판촉행사'로 보고 관련 비용을 납품업자에게 50% 넘게 분담시키지 말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수용됐다면 자칫 납품업자 의지와 달리 쿠팡이 '과도한 비용 발생'을 이유로 정기배송을 축소·폐지했을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기배송은 판촉행사 아냐...왜?
2018년 공정위는 쿠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을 적발, 과징금 2100만원을 부과했다. 쿠팡은 납품업자와 직매입 거래를 하면서 계약 서면을 주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반품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정위 조사관은 '정기배송'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정위 조사관은 "쿠팡이 정기배송이라는 명칭의 판촉행사를 진행하면서 233개 납품업자에게 할인금액이 50%를 초과하는 총 2억8500만원을 부담시켜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대형유통업체는 납품업자에게 판촉비의 50%를 초과해 부담시킬 수 없다. '갑'인 대형유통업체가 '을'인 납품업자에게 부당하게 비용을 떠넘길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정위 조사관은 쿠팡의 정기배송이 판촉행사며,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비용을 납품업자에게 전가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쿠팡은 정기배송이 확정적·상시적 상품 판매 정책이라 임시적·탄력적인 판촉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납품업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 100% 사전 합의하에 참여한 것이고, 제반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쿠팡이 대부분을 부담해 50%를 초과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공정위원들은 해당 부분에 대해 쿠팡을 무죄로 판단했다. 정기배송은 판촉행사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대규모유통업법에 규정된 비교적 '폭넓은 정의'에도 불구하고 정기배송은 판촉행사로 인정되지 않았다. 공정위가 판촉행사로 판단했다면 자칫 납품업자 의사와 달리 쿠팡이 비용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정기배송 서비스의 지속 여부를 고민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사진제공=쿠팡/ 사진제공=쿠팡
'이벤트성' 있어야 판촉행사...CU 갑질에도 적용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판촉행사는 '명칭이나 형식에 상관없이 상품에 대한 수요를 늘려 판매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행하는 모든 행사 또는 활동'이다. 이대로라면 정기배송은 판촉행사가 맞다. 그러나 공정위원들은 이런 폭넓은 정의를 인하면서도 모든 판매증진 활동을 판촉행사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원들은 "판촉행사는 일상적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기간 임시적·탄력적으로 이뤄지는 이벤트 성격의 행사에 한정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규모유통업법 시행령에서 판촉비용 부담에 관한 약정 사항으로 판촉행사 기간을 기재하도록 규정한 것을 근거로 댔다.

공정위원들은 "일반적·상시적으로 진행되는 정규판매 채널로 볼 수 있는 쿠팡의 정기배송은 판촉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해당 혐의는 위법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이벤트성, 임시성, 탄력성 등을 갖춰야 판촉행사라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해당 심결로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판촉행사 해당 여부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최근 공정위가 제재한 BGF리테일(편의점 CU의 가맹본부) 사건이 대표적이다.

BGF리테일은 묶음판매(N+1, 상품 N개를 사면 1개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시행하면서 납품업자에게 '+1' 상품 비용의 50%를 초과해 부담시켰다. 공정위 심의에서 묶음판매가 판촉행사가 맞는지를 두고 BGF리테일과 공정위 조사관 간 의견이 부딪쳤다. BGF리테일은 판촉행사가 아닌 상시적 판매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원들은 묶음판매 품목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로 바뀌는 등 임시성·탄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묶음판매가 판촉행사로 인정되면서 BGF리테일의 법 위반이 확정됐고, 공정위는 과징금 16억74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BGF리테일에게는 상시적 행사겠지만 납품업자에게는 임시적·탄력적 행사였다"며 "판촉행사로 인정되면서 법 위반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편의점 CU ⓒ 뉴스1 / 사진제공=뉴스1편의점 CU ⓒ 뉴스1 /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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