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처 교과서'라던 日, 코로나19 크루즈에 무너졌다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0.02.1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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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한 선원(왼쪽)이 보호장비를 갖춘 근로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사진제공=로이터10일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한 선원(왼쪽)이 보호장비를 갖춘 근로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사진제공=로이터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코로나19'(COVID-19) 확진자가 200명 넘게 나오면서 '바이러스 배양소'가 됐다는 국내외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재난 대처의 교과서로 불렸던 일본의 매뉴얼이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크루즈선에선 처음 선상 격리를 시작하던 지난 5일 이후 11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확진자가 발생했다.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확진자에 전수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선내 집단 감염 위험성을 경고하는 비난이 커지자 결국 선상 격리를 고집했던 일본 정부도 이날 약 200명의 일부 탑승객을 배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우선 부실한 초기 대응이 크루즈선의 바이러스 확산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초기 감염자가 나온 후 재빨리 탑승객을 하선시켜 바이러스 검사를 통한 격리 조치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의심환자가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선상 격리를 결정하면서 밀폐된 공간이 많은 크루즈선의 내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일을 키웠다고 NHK와 아사히 신문 등이 전했다.

일본 관료사회의 특성이 만든 '인재'란 분석도 있다. 장기집권으로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런 관료제의 병폐가 쌓이면서 아베 정부의 대응에 반기를 들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감염병의 특성 상 정보를 공개하면서 확산 방지에 힘써야 하지만 아베 정부는 내부 단속에 급급했다. 아직까지 일본 정부는 크루즈 내 확진자를 일본 확진자 통계에도 넣지않고 있다. 일본의 유력 주간지 슈칸포스트의 인터넷판 뉴스포스트세븐은 "선상 격리에 대한 낙관적 관망이 감염자를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지진이나 태풍 등 오랜 시간 다져온 매뉴얼과 달리 처음 맞닥뜨리는 감염병에 대한 매뉴얼이 부실했다는 말도 나온다. 일본은 자연재해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의 역할까지 매뉴얼화 돼 평소에 훈련을 하는데, 집단 감염병 등은 익숙치 않은 경험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사태도 크게 겪지 않았다.

크루즈선에서 문진 등을 맡았던 남성 검역관의 확진 판정도 충격적인 사례라는 평가다. 3일 밤부터 하루 동안 배에 머물며 각 객실을 돌아다닌 이 검역관은 문진표를 받거나 체온 등을 쟀고, 승객을 만날 때마다 손과 손가락 등도 소독해 줬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4일 밤 하선할 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았는데 검사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은 것. 해당 검역관은 크루즈선 안에서 고글이나 전신 방호복을 착용하지는 않았지만, 마스크와 장갑은 낀 상태였다. 매뉴얼이 있었더라도 검역관에 대한 검사를 어떻게 할지와 검역관의 고글 착용 여부 등 보호장비에 대해서는 사각지대가 있었던 것이다.


도쿄올림픽 등 국제 행사 개최도 크루즈 사태를 키웠다고 보기도 한다. 방사능 논란을 가까스로 잠재웠는데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다수 발생할 경우 올림픽 성패를 장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관광산업과 함께 이어지는 경제적 충격까지 우려하면서 아베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접근했고 판단 착오를 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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