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취소·무효'는 법적으로 다르다?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0.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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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취소·무효'는 법적으로 다르다?


취하와 취소 그리고 무효는 법률적으로 구분해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일상용어와 달리 그 의미하는 바가 법률적으론 달라지기 때문이다.



'취하'는 보통 '취소'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되지만 형사소송법에서 구별한다. '취하'라는 단어가 좀 더 '법률적'이고 '전문적'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어서 보통 '취소'라고 써야 하는 경우에도 '취하'로 쓰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2월14일 "민주당만 빼고"란 제목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에 대한 검찰 고발을 '취소(取消)'하기로 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출입기자들에게 공지한 문자에는 "고발을 취하(取下)한다"라고 써 있다. 언론도 대체로 '고발 취하'로 보도했다.

'고발 취하'는 엄격히 따지면 법률용어를 잘못 쓴 경우다. 형사소송 절차로 고소와 고발을 한 뒤 이를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은 '취소'로 써야 한다.

◇고소·고발 '취소'로 써야


형사소송법 제232조(고소의 취소) 제1항은 '고소는 제1심 판결선고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 제2항은 '고소를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하지 못한다'로 돼 있다. 고발도 고소의 '취소'관련 규정을 준용하게 돼 있다.

드문 일이지만 검사의 '공소제기'도 '취소'가 가능하다. 형사소송법 제255조엔 '공소는 제1심 판결의 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취하'는 민사소송에서 '소제기를 취하한다'고 할 때 쓴다. '취하'의 의미는 신청 또는 제출한 서류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취하'를 '취소'로 바꾸자는 주장이 국어학자들을 중심으로 있기도 했지만 법률적으로 의미를 구별해 쓰고 있어서 간간히 용어순화를 하면서 법률을 개정할 때도 채택되지 않았다.

장지현 변호사(법률플랫폼 머니백)는 "고소·고발의 경우엔 단순히 신청서류를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라 고소·고발을 없었던 것으로 해야 수사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취하'가 아니라 '취소'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 형사소송절차에서도 '취하'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상소(항소나 상고)'에 대해선 '취하'를 쓴다. 형사판결 결과에 대해 상급심에 '상소'한 뒤 이를 철회하고자 할 때는 이미 제출한 상소 서류를 거둬들이는 게 되므로 '취하'를 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 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 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지난 3일 대검찰청은 윤석열 검찰총창 지시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해부터 효력을 잃은 데 따라 해당 법조항 위반으로 재판 중인 사건의 '공소'를 '취소'하고 '상소'를 '취하'하기로 한 바 있다. 대검 지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소'는 '취소', '상소는 '취하'다.

◇'취소'와 '무효'도 법적으로 다른 의미

법률용어로 쓸 때 특히 민사법에서 '취소'는 '무효'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러 조문들에서 두 용어를 구별해 달리 규정하고 있다.

'무효'에 대해서는 민법 제137조가 규정하고 있다.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한다는 것이 무효의 원칙적 모습이다. 다만, 일부 무효인 그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않는다.

무효가 되면 법률행위를 했던 것이 사라지고, 애초에 법률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반면, 민법 제141조에서 규정하는 '취소'의 효과는 법률행위가 유효하게 성립했지만 사후적으로 법률행위를 효력 없는 것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처음 법률행위를 하던 때부터 그 행위가 합법적이지 않은 것일 경우는 '무효', 일단 유효하게 성립된 법률행위를 나중에 효과 없게 만드는 경우는 '취소'인 것이다.

◇혼인 '무효'와 '취소'는 전혀 달라

대표적인 예가 혼인의 무효와 취소다. 우리 민법은 혼인무효사유에 해당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혼인무효소송으로, 혼인취소사유가 있는 때에는 혼인취소소송으로써 혼인의 효과를 다툴 수 있도록 구분하고 있다.

민법 제815조는 혼인무효사유로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경우,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 혈족 포함) 사이 혼인인 경우, △당사자 사이 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던 때, △당사자 사이 양부모계 직계혈족관계가 있던 때를 규정하고 있다. 이들 사유에 해당 돼 혼인무효소송을 하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혼인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 돼 처음부터 부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된다.

민법 제815조는 혼인취소사유로 △만 18세의 혼인적령이 안 된 미성년자의 결혼, △미성년자 또는 피성년후견인이 부모나 성년후견인의 동의 없이 결혼한 때, △6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런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결혼, △6촌 이내 양부모계의 혈족이었던 사람과 4촌 이내 양부모계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결혼, △중혼,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나 그 밖의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경우, △사기나 강박으로 혼인의사를 표시한 경우를 들고 있다. 이들 사유에 해당돼 혼인취소소송을 통해 판결이 확정되면 그 때부터 이들의 혼인 관계는 앞으로는 종료된 것으로 본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혼인 무효는 혼인 관계가 사라지는 효력이 처음 혼인이 성립한 때로 소급해 혼인이 없던 셈이 되지만 혼인 취소는 장래를 향해서만 혼인 관계를 종료시키는 효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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