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왜 한진칼 주식을 팔았나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황국상 기자 2020.02.1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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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한진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한진칼 주주총회 판세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KCGI는 치열한 의결권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 여겨졌던 국민연금의 보유지분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측의 지분율 차이가 박빙이라 국민연금의 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영향력은 크게 줄었다는 의미다. 반면 소액주주 등 제3의 주주들의 표가 더욱 중요해졌다.

4% 이상 관측과 달리 최근 지분 줄여 2.9%
박능후 기금운용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관련 여부를 논의한 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박능후 기금운용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관련 여부를 논의한 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12일 증시에서 한진칼 주가는 전날보다 9.8% 상승한 4만3500원에 마감했다. 양측의 지분 전쟁이 재개 될 것이란 전망이 확산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3월 열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정기주총에서 조 회장 진영이 다소 우세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지난해 말 기준 KCGI의 한진칼 지분은 17.29%로 2대 주주다.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6.49%), 반도건설(8.29%)과 손 잡으며 공동지분율이 32.06%로 껑충 뛰었다. 이에 반해 조 회장은 잠재적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카카오(1%)와 델타항공(10%) 등을 포함해 33.45%를 보유한 상태다. 여기에 대한항공 사우회(3.8% 추정)가 더해질 수 있다.

시장의 관심사는 4%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국민연금 의결권 향방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연금도 지분이 2.9%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최근 상황을 종합하면 일단 KCGI의 편은 아닐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국민연금이 한진칼 지분을 줄인 배경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어느 쪽에 표를 던질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위탁운용사, 수익 위해 보유 주식 팔았다
국민연금은 왜 한진칼 주식을 팔았나


그러나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아직 국민연금이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분감소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면 안될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국민연금의 주식운영방식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국 증시에서 122조원 가량의 자금을 운용한다. 이 중 절반인 66조원 정도를 직접 사고 판다. 나머지 56조원은 자산운용사들에 일임하는 형태로 위탁 운용한다. 공시로 나오는 국민연금의 지분은 직접운용분과 위탁운용분을 더한 숫자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민연금이 직접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현재 3%의 안팎의 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운용사들이 일임계약에 의해 자기 판단으로 사들였다가 청산하지 않고 보유한 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 2018년~2019년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이 12%에 육박했던 적이 있다”며 “이 역시 위탁운용 지분이 급증했었기 때문인데, 이를 사후에 보고받은 국민연금이 크게 당황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귀뜸했다.


이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지배구조 재편과 관련해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한다는 해석은 어렵다”이며 “본의 아니게 확보하게 된 의결권 때문에 등이 떠밀린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본의 아니게 확보된 의결권 등 떠밀린 상황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 한 정관변경 안건이 부결됐고 석태수 한진칼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65.46%의 찬성표를 얻어 승인됐다. (한진칼 제공) 2019.3.29/뉴스1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 한 정관변경 안건이 부결됐고 석태수 한진칼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65.46%의 찬성표를 얻어 승인됐다. (한진칼 제공) 2019.3.29/뉴스1
최근 들어 지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주가가 오르니 위탁 운용사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보유주식을 팔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진칼 순이익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개 연도 중 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 적게는 408억원에서 많게는 396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한진칼은 최근 2019년 순손실이 25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경영분쟁이 확대된 결과로 주가가 올랐고,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받은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주식을 처분하는 게 당연했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선 국민연금이 직접 운용계정으로 한진칼 주식을 적극 매수하지 않았던 배경도 주목하는데, 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국민연금은 당시 양사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고 이로 인해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와 연관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실형을 받았다. 보유지분이 있어 한진칼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영향력은 최소화하려는 속내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한진칼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며 국민연금이 (분쟁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며 “양대 주주 가운데 더 나은 기업가치 제고전략을 제시하는 쪽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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