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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기억 대리체험

머니투데이 황모과 작가 2020.02.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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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 <5회>





-산책 기억을 구매했던 사람입니다. 당신 연인과의 추억을 조금 더 판매해 줄 수 있나요?

당신은 흔쾌히 당신의 기억을 나눠주었습니다. 나는 당신과 연인이 나눈 아름다운 시간을 조금 더 대리 체험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비좁은 거실, 낡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함께 영화를 보고, 하루에 있었던 크고 작은 감정들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가 완벽하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서로의 불완전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깨닫습니다. 아주 평범한 인생의 단편들입니다. 당신과 당신 연인이 아주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란 걸 느낍니다. 소박한 욕망과 강렬한 신념이 공존하고, 때로 자신들의 신념을 생각만큼 일상에서 구체화하지 못한다는 내적인 반성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불안할 때, 당신의 연인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연인이 우울할 때, 당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의기소침한 연인을 일으킵니다. 연인이 화가 났을 때, 당신은 연인보다 더 흥분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부러워요. 저도 이런 결속을 느끼고 싶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정서적 라이프 라인. 둘만 걷는 길은 한적한 오솔길이지만 그 길은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지요. 반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지쳤을 때 살짝 벗어나 한숨 돌리는 오솔길이 되기도 하고요. 내게도 그런 관계가 생길 수 있을까요?



당신의 눈과 감각을 통해 들여다본 탓일까요. 나는 당신의 연인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당신 마음을 공유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근데 왜 당신은 이토록 아름다운 기억을 판매했을까요? 두 사람은 헤어진 걸까요?

당신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연인의 눈빛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나를 구원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막무가내 같은 희망이 되었어요. 물론 당신의 연인이 나와 만난다고 나를 사랑하진 않겠죠.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그래도 당신의 연인이 당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성실하고 다정하게 대한 것을 저는 지켜봤습니다. 제게도 그런 눈빛을 보여줄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뭐든지 상관없을지도 몰라요. 그냥 죽을 순간을 기다리던 제게, 늘 머물러 있던 공간에서 한 발자국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시작해보는 계기가 필요한 것뿐일지도 몰라요. 그저 강렬하게 다짜고짜 당신의 연인을 만나러 가고 싶어요.

저는 제가 지나온 삶을 적어 당신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두 분 이미 헤어진 거라면 당신의 옛 연인을 제가 만나봐도 되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냥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식이어도 좋다고요. 두려워하며 며칠을 고심해서 썼던 메일이 무색하게도 당신의 답은 간결한 예스였어요. 당신은 흔쾌히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고, 심지어 옛 연인을 직접 만날 방법까지 알려주었지요.


금세, 당신이 왜 그렇게 간단히 내게 연락처를 알려줬는지 알게 됐지요. 이제 나의 연인이 된, 당신의 전 연인을 나는 쉽게 만났습니다. 걱정할 필요도 없었어요. 우린 만나자마자 손을 잡았고 함께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답장을 받은 뒤 고작 10분 뒤의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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