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살아야겠다

머니투데이 황모과 작가 2020.0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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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 <4회>

④살아야겠다


차라리 그냥 도망쳤어야 했다고 당신도 제게 말할지 몰라요.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결국, 무력하게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저 자신을 증오하며 완벽하게 고립됐어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해, 엄마가 돌아가신 뒤 뿌옇던 허무함은 더욱 분명하고 강경해졌어요.

그 후 가끔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엄마만큼이나 세상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무례하고 난폭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딱 만 원짜리 민주적 소비자들. 오천 원짜리 똑똑이들. 그때마다 저는 나사가 튕겨 나간 고장 난 로봇처럼 행동했고 잘리기 일쑤였죠.



거리를 걸으면 그런 사람들만 보였어요. 자기 가족을 품에 꼭 껴안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빨을 보이는 부모들. 단돈 천 원이라도 조금 더 타인에게서 뜯어내려는 각박함, 생존이라는 이름의 비겁함, 불의, 폭력들, 증오와 질투.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받아 드는 싸구려 합리화, 동원된 관제 데모, 경도된 광기와 신념 같은 걸 보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저는 다양하게 역겨움을 느꼈고 결국 골방에 처박혔습니다.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매번 비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어요. 그건 엄마가 우리를 대한 모습이었어요. 엄마가 딸들을 자기 삶의 도구로 삼았던 것처럼, 저도 제 삶을 엄마의 도구로 여기고 있었지요. 그랬으니 엄마가 사라진 뒤 내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겠죠.



엄마를 간병했던 경험을 살려 간병인을 직업으로 삼을까, 고민해 본 적도 있었지만, 고통받는 환자들을 모두 죽이는 게 그들을 편하게 하는 게 아닐까, 침착하게 그런 상상을 하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습니다. 그런 마음을 마주했는데 간병인을 직업으로 삼을 순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면 여전히 정신없이 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엔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곁을 지켰고, 그 바람에 엄마의 임종을 보겠다는 생의 명확한 목적이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수 있었어요. 이제는 곁에 없는 세상에서 제일 미운 엄마를 한없이 그리워하며 스스로 죽어가고 있어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어요.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죠. 한 번도 삶의 다음 목적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는 그냥 골방에 머물고 있어요. 과연 이 방을 나갈 힘이 내 안에서 싹틀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라면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방법이겠죠. 어느 쪽이든 월세가 석 달 밀린 이 방에서 끌려나가기 전에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사라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국립 홈 호스피털'에서 배정한 인터넷 주치의가 저에게 '모멘트 아케이드'를 추천했습니다. 체험 장비도 보내주었어요. 광고를 보면 대여비도 무료더군요. 저는 각종 약 광고, 보험 광고를 심드렁하게 본 뒤 모멘트를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기기들은 다 광고비로 개발되나 봐요.

아케이드 안에서 줄곧 방황했어요. 그 사이에 결국 셋방에서는 끌려나갔고, 장소만 바뀐 채 다시 아케이드를 헤매게 됐는데 당신 모멘트를 마주한 거예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순간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사는 게 별건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당신이 그렇게 느낀 걸 저도 간접 체험한 거겠죠. 괴로운 일 슬픈 일 걱정되는 일이 매 순간 이어지는 건 삶의 당연지사. 그 와중에 아주 잠깐만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다시 또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찾아옵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나는 대신 체험합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하철 광고판, 공중화장실 문에 붙은 명언 같은 싸구려 메시지가 감각 재현 슈트를 통해 내 심장 위에 겹쳤습니다. 그 순간, 제 심장은 완벽하게 요동쳤어요.

'살아야겠다.'

이상한 일이죠. 겨우 그 한 시간의 산책을 대리 경험하고 싸늘하게 굳었던 마음이 무너졌어요. 엄마 장례식 때에도 터지지 않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 삶은 보상받아야 해.'

너무도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나 봅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인생의 고통은 원래 모든 인생에 부록처럼 따라오는 것. 나와 엄마가 받은 고통도 그 순간 내가 지나쳐 온 인생의 풍경이라고. 짧진 않았지만 내 인생의 전부일 순 없다고. 순도 100 프로의 고통 그 자체도 내가 품었던 인생이었다고.

하나 남은 문제는 내게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직업도 돈도 미래도 없어서, 숨통을 틔워줄 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내 12년을 보상해 주지?'

저는 모멘트 아케이드에서 당신에게 연락했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추가로 사고 싶다고 개별 메시지를 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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