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표가 아쉬운 조원태 vs KCGI…'전자투표' 새 변수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0.02.07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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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 참여율을 높이는 전자투표의 도입 여부가 한진그룹 경영권 싸움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경영권 수성에 나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이나, 공격에 나선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 연합 측의 지분율이 엇비슷해 모두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KCGI 측은 전자투표의 도입을 강력 촉구했지만, 조 회장 입장에서는 전자투표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 신중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 한 정관변경 안건이 부결됐고 석태수 한진칼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65.46%의 찬성표를 얻어 승인됐다. (한진칼 제공) 2019.3.29/뉴스1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 한 정관변경 안건이 부결됐고 석태수 한진칼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의결권 있는 주식 대비 65.46%의 찬성표를 얻어 승인됐다. (한진칼 제공) 2019.3.29/뉴스1


‘할까, 말까’ 셈법 분주
6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오는 7일 이사회를 열고 경영쇄신 방안 등을 포함한 주요 안건을 논의한다. 주주 가치 제고 방안 중 하나로 전자투표 도입 여부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직접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을 통해 의사를 표시하는 제도다. 주총장에 직접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간편하고 빠르게 주총 안건에 표를 행사 할 수 있어 소액주주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전자투표 도입이 결정되면 한국예탁결제원 등 전자투표 서비스 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바로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주총 개최일 14일 전 소집공고와 함께 전자투표 도입 여부를 안내하기만 하면 된다.



한표가 아쉬운 조원태 vs KCGI…'전자투표' 새 변수
“한 표가 아쉽다” 소액주주 모으기 전략
KCGI는 지난 5일 한진칼에 전자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명분은 주주권리 제고지만, 속내는 ‘내 편’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자투표가 더 용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지난해말 기준 KCGI의 한진칼 지분은 17.29%로 2대 주주다.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6.49%), 반도건설(8.29%)과 손 잡으며 공동지분율이 32.06%로 껑충 뛰었다.


조 전 부사장이 빠진 조 회장 일가 지분 22.45%를 훌쩍 뛰어넘는다. 델타항공(10%)과 카카오(1%) 대한항공 사우회(3.8% 추정) 등의 우호지분을 합치면 5.27%포인트 우위에 서게 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주총 표대결 양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KCGI 측은 주총 전까지 지속적으로 여론전을 펼쳐 우군을 더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연금 지지에도 유리
조 회장측도 전자투표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참여 주주가 늘수록 적군 표도 늘어나지만 내 표도 늘어난다. 배당 확대 등 적절한 주주 제고 방안을 내놓으면 소액주주들을 회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국 교민들을 태우고 돌아올 전세기에 탑승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인천국제공항=공항사진기자단>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국 교민들을 태우고 돌아올 전세기에 탑승하기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인천국제공항=공항사진기자단>
국민연금(3.45% 추정) 등 기관 투자자들의 표심을 얻는데도 유리하다. 전자투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척도 중 하나다. 책임투자를 강화하면서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일수록 국민연금의 지지를 받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난해 주총투표 결과를 보면 조 회장이 선뜻 도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한진칼 주총 참여 지분율은 77.18% 였는데, 조양호 회장 등이 28.93%로 최대주주였고 KCGI 10.81%, 국민연금 7.16%, 타임폴리오 3.61% 등을 들고 있었다.

당시 주총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석태수 한진칼 대표의 재선임 안건이었다. 투표에서 찬성 65.46%, 반대 34.54%로 재임에 성공했다. 그런데 참여지분율 기준으로 보면 찬성한 지분이 50.52%, 반대한 지분이 26.66%다. 분명히 반대의사를 표시한 KCGI 지분 외 약 15% 이상의 지분이 석 대표의 재선임에 반대한 것인데, 대주주를 제외한 소액주주 지분(24.19%)의 절반이 넘는 수였다.

조 회장은 회사 인력을 동원, 위임장을 모으는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 불확실성을 높이는 전자투표를 굳이 도입할 유인이 적을 수도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한진칼 표대결에서 중요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지지를 기대하기 보단 확실한 내 편을 만드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전자투표 도입만으로 누구의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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