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머니투데이 이지윤 , 유효송 , 김예나 인턴 기자 2020.02.05 05:25
글자크기

[the300]

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① 與野 영입인재 잇단 '구설수'…"한국정치의 고질병"



총선을 앞두고 정당별로 인재를 영입하느라 분주하다. ‘감동 스토리’를 담은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나름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 인사들이다. 하지만 잡음도 적잖다. 일부 인사는 ‘갑질’, ‘미투’ 등 대형 의혹에 휩싸였다.

정치권에선 영입 인재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온다. 기성 정치권과 다른 ‘참신’을 위해 시작된 인재 영입이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영입인재가 독 됐다"…與野 연달아 '빨간불'=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 인재영입 16호와 8호까지 발표를 마쳤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의혹과 논란의 주인공이 된 인물도 여럿이다. 대표적으로 민주당은 ‘이남자(20대 남자)’ 원종건씨, 한국당은 박찬주 전 육군대장 관련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미투’ 의혹을 받은 원씨는 결국 인재영입 자격을 스스로 반납했다. ‘영입2호’로서 지역구 출마까지 선언한 다음이었다. 민주당은 내부 조사에 나서겠다고 수습했지만 원씨가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민주당은 이외에도 ‘전문변호사 미등록’(이소영), ‘보은영입’(이탄희), ‘논문표절’(최기일), ‘스펙용 창업’(조동인), ‘블랙리스트 미포함’(이수진) 등 논란이 계속됐다.

한국당은 박찬주 ‘갑질’ 논란으로 정치적 상징성이 큰 ‘영입1호’를 아예 바꿨다. 박 전 대장은 공관 병사에게 호출용 전자발찌를 채우고 밭을 갈게 하는 등의 의혹을 받아 지난 2017년 불명예 전역한 인물이다.

또 한국당에선 새누리당 소속으로 구의원까지 역임한 김병민씨를 또 ‘영입’해 논란을 빚었다.

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공식'이 된 인재영입…與野 수난사의 시작=인재영입은 공약발표와 버금가는 무게감을 지닌 ‘이벤트’다. 오히려 공약발표보다 대중에 미치는 파급력이 높다.

당이 추구하는 색깔을 한 눈에 보여주기에도 효과적이다. 여야 인재 영입 경쟁이 본격화된 것은 15대 총선 때다.

김영삼 대통령(신한국당)과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공천권을 쥐고 영입전을 펼치면서 인재영입은 정치권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17대 총선부터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소아마비 장애인인 장향숙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를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하자 한나라당은 시각장애인 정화원씨를 비례대표 8번으로 공천했다.

19대 총선에서도 전태일 열사 누나인 전순옥 전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으로 배정되자 새누리당은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이자스민씨를 공천했다.

하지만 인재영입 경쟁은 언제나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정치권에 몸 담은 적 없는 스토리형 인재에겐 ‘부실검증’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각 당이 구상한 컨셉에 맞는 인사를 포털 검색이나 지인 추천 등 한정적 방법으로 발굴하다보니 자질 검증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9대 때 김용민 시사평론가의 막말 논란이 있었다. 한국당도 19대 총선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문대성씨를 영입했다가 ‘논문표절’ 논란을 겪었다.

◇"사전검증·인재육성 활성화 필요"=전문가들은 인재영입 논란이 부실한 정당체계를 가진 한국정치의 ‘고질병’이라고 진단했다.

당내 인적기반이 부족한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위해 장애인·여성·청년 등의 정체성과 감동적 이력을 가진 인재영입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스토리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건 결국 ‘느낌표로 봤던 어린애가 벌써 이렇게 컸네’ 이상의 의미가 없다”며 “(영입인재의) 정치경험이 없다는 게 자랑이 돼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결국 해결책은 일회성 인재영입이 아니라 당내에서 정치를 충분히 경험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있다. 인재영입 자체가 아닌 ‘부실검증’이 문제인 만큼 사전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은 원씨 논란을 거치며 사전검증 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반복되는 '이벤트 인재영입'…육성인재는 어디로?

’586 용퇴론’, ‘정치물갈이’ 20대 국회 후반기의 키워드다.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깜짝 인재’를 영입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벤트성 인재 영입이 이젠 진부하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눈에 띄는 스토리 홍보엔 방점을 찍으면서 정작 당내 인재육성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다.

◇이벤트성 인재영입에 당내 '상대적 박탈감' 우려=더불어민주당 ‘영입2호’ 원종건씨가 ‘미투’ 의혹으로 인재영입 자격을 반납한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도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선거국면에서 영입인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공천에서 혜택을 받을 경우 당내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이들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대한민국의 많은 정당이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 데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당내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장경태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자원봉사자로 시작해 15년 동안 대학생위원장과 부대변인 등을 거쳐 청년위원장이 됐다”며 “그러나 같은 스토리여도 기업의 임원이나 스타트업 대표라는 ‘사회적 경력’을 더 드라마틱하게 보기 때문에 당에서 인재영입을 하는 것 같다”고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했다.

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이합집산·기득권 정치문화…인재육성은 '단기'에 그쳐=정치권에 당내 인재육성을 위한 ‘청년정치’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청년정치스쿨’, 자유한국당은 ‘청년정치캠퍼스Q’, 바른미래당은 ‘청년정치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단기교육에 그쳐 체계적으로 청년정치를 육성하기 힘든 구조다. 민주당 ‘청년정치스쿨’은 3~4회에 걸쳐 현역 국회의원과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게 전부다. 그나마 교육과정이 긴 한국당 ‘청년정치캠퍼스Q’는 2개월,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도 6개월에 그친다.

일각에선 당내 인재육성이 어려운 이유로 ‘이합집산’의 정치문화를 지적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민주정치는 정당을 잘 운영하고 정책을 만들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한국정치는 대통령 권력을 창출하는 데만 혈안”이라며 “여야 모두 위기의 변곡점마다 당명을 바꾸고 이합집산을 계속하다보니 정당 안에서 ‘경력사다리’를 만들고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재 영입의 정치학 "15대때 YS·DJ가 시작한 영입전쟁"
◇인재육성의 시작은 '정당정치' 활성화=전문가들은 당내 인재육성의 모범사례를 유럽에서 찾는다. 유럽은 청년 정치인 육성을 정당의 임무로 여긴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가장 오래된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경우 ‘봄메쉬빅’이라 불리는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하며 청년 정치인을 키운다. 칼 얄마르 브란팅, 타게 엘란데르, 올로프 팔메 등 사민당 출신 역대 총리도 이같은 교육과정을 거쳐 정치경험을 쌓았다.

어린 나이부터 정당에 가입해 현실정치를 배우는 유럽의 정치문화도 한 몫 한다. 스웨덴 녹색당 대표를 지냈던 구스타프 프리돌린은 11세에 입당해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며 19세에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정당가입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막혀있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당내 청년기구인 청년미래연석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정당정치 경험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젊은 세대에게 지역위원장 기회를 줘야 한다”라며 “그런 활동을 통해 현실정치를 배워 지방의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국회로 올라오는 인재육성 케이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