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냐, 강성부냐…기로 놓인 국민연금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2.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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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냐, 강성부냐…기로 놓인 국민연금


"조원태(한진칼 회장)냐, 강성부(KGCI 대표)냐." 올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한진칼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집안 싸움에 개입할 이유 없다"지만…



4일 금융감독원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한진칼 지분을 3.45% 보유하고 있다. 이는 △KCGI 측 3자 연합의 지분율 합계 32.06%는 물론이고 △조 전 부사장 지분을 뺀 이후의 조 회장 측 지분(22.45%)에 조 회장의 백기사로 여겨지는 미국 델타항공(10%) 및 카카오(1%) 등을 더한 33.45%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비중이다. 이날 조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여동생 조에밀리리(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 회장 지지를 공식 선언하면서 조 회장 측 추가 지분 이탈은 없을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이 지분율은 결코 작지 않다. '조원태 vs 강성부' 사이의 대결에서 캐스팅보트로는 결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및 대한항공 경영권을 둘러싼 이번 분쟁에서 오너 일가 양측의 지분율이 비등한 상황인 만큼 양측 모두 한 표라도 아쉬운 상황이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장관 뒤로는 참여연대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이 최근 발표한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강화 가이드라인 보완과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고려한 투자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9.11.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장관 뒤로는 참여연대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이 최근 발표한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강화 가이드라인 보완과 ESG(환경·사회·거버넌스)를 고려한 투자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9.11.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집안 싸움에 개입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양측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을 각각 제시하고 그 중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하는 쪽에 손을 들어줄 뿐"이라고 말했다.

◆"단기 시세차익 추구 행동주의 펀드와 연계 고려하지 않아"

하지만 국민연금은 그간 "행동주의 펀드와 손을 잡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지난달 31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주최로 열린 '책임투자 포럼'에 배포한 자료집을 통해서도 "국민연금은 기금 장기 수익과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장기 투자자"라며 "단기 시세차익만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와 투자철학과 방향 등에서 원천적으로 다르다. 행동주의 펀드 등과의 연계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못박았다.


'조원태 vs 강성부' 대결의 본질이 한진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KCGI 측의 최근 일련의 행보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단기 차익만 추구한다고 발표하지는 않는다. 여타 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행동주의 펀드들이 내세웠던 명분도 '장기 주주가치 제고'였다.

◆KCGI·반도건설·조현아 '3자 연합군' 지지 시 기존 방침 번복 '곤혹'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에서 거행됐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두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유족들이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에서 거행됐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두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유족들이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수익률 제고가 지상가치인 국민연금은 보다 나은 기업 가치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앞세운 KCGI 측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국민연금은 사실상 최근까지의 방침을 번복하는 셈이 된다.

양측은 어쨌든 3월 주총 전까지 한진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 싸움을 치열하게 벌일 전망이다. 양측 부동표를 제외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KCGI 측은 지난달 말 조 전 부사장, 반도건설과 공동 주식보유 계약 체결 사실을 공시한 후 "전문 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경영을 강화해 어느 특정 주주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그간 소외된 일반주주의 이익을 증진하며 주주 공동 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모범적 지배구조를 정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원태냐, 강성부냐…기로 놓인 국민연금
조 회장 측은 아직 명확한 기업가치 제고 전략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3월 주총 전에 맞불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 '적극적 주주 행동' 대상 아냐

한편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 의결한 '적극적 주주행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올해부터 투자대상 기업 중 일부를 골라 주주제안 등 적극적인 주주 행동에 본격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한진칼 경영권 분쟁 사안은 일단 '적극적 주주행동' 대상은 아니라는 평가다.

국민연금은 △배당정책, 임원 보수 한도 책정, 법령상 위반 우려, 정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급 급락 등 이유로 중점 관리 사안이 발생했거나 △대규모 산업재해 발생이나 심각한 환경훼손 등 예상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리스크가 발생해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등 '예상치 못한 우려사안'이 발생한 기업 등 미리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만 일정 절차를 거쳐 주주제안 등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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