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M&A 투자액 97% 감소…삼성은 왜 미래투자 안하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2.05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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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M&A 투자액 97% 감소…삼성은 왜 미래투자 안하나?


"투자은행이나 유망 기업 중에서 M&A(인수·합병)를 위해 삼성전자를 찾는 곳이 요새 크게 줄었습니다."



3일 국내 투자은행(IB)의 M&A 담당자는 삼성전자 (82,400원 ▲1,600 +1.98%)의 글로벌 M&A가 "거의 올스톱 상태"라며 이렇게 말했다. 110조원을 넘는 보유현금이나 세계적인 위상, 글로벌 전략을 감안할 때 수많은 업체와 투자은행이 삼성전자에 M&A를 타진하지만 3년 전에 비하면 접촉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이 관계자는 "유망업체의 '딜'을 삼성전자에 제시해봐야 안 산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며 "중대형 M&A에서 삼성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동력인 M&A에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바뀐 걸까?

3년새 성장동력 발굴 기업인수 M&A 97% 줄어
M&A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눈에 띄는 큰손으로 떠오른 시기는 2016년이다. 불과 1년 동안 1000억원이 넘는 M&A만 6건을 성사시켰다.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로 불리는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겸 오디오업체 하만(80억달러·한화 9조원)을 인수하는가 하면 미국 럭셔리 주방가전업체 데이코도 이때 사들였다. 기업 M&A 사례는 아니지만 중국 1위 전기차업체 비야디(BYD)에 30억위안(약 5000억원)을 지분 투자하는 결정도 2016년 여름에 단행했다.


해당 업계를 완전히 장악한 기존 업체를 통째로 인수하거나, 유망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신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7년. 삼성전자의 M&A 엔진은 싸늘하게 식었다. 2017년 2건과 2018년 2건, 2019년 2건 등 인수 실적은 초라하다. 그나마 인수한 기업들도 대부분 투자금액이 크지 않은 스타트업이다. 금액만 놓고 볼 때 삼성전자의 2019년 M&A 투자금액은 2016년 대비 단 3%에 그친다.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경영리더십도 발 묶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관련 업계에선 삼성의 위축된 M&A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미·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등이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M&A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빅딜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경영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상황에 밝은 전문가들은 또 다른 원인도 내놓는다. 지난달 정기임원인사에서 드러났듯 삼성전자는 여전히 선제적 투자 의지가 그 어떤 기업보다 강한 편이다.

그런데도 M&A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뒤로 물러선 이유는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그만큼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투자전략을 지휘하는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팀 임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거나 검찰 수사로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M&A 결정이 당연히 후순위로 밀릴 수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M&A를 진행하려면 대상 물색부터 사업 분석, 인수 후 기대효과, 기업가치 평가, 협상 등에만 최소 수 십 명을 긴박하게 가동해야 한다"며 "여기에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원활하게 작동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애플·구글은 미래 대비 속도…삼성 골든타임 놓치나
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쟁상대인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 기회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혁신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애플은 올초 2억달러(약 2000억원)을 주고 인공지능 스타트업 엑스노어를 인수했다. 이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업체들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삼성은 지켜보기만 했다.

이어 구글이 앱 개발 플랫폼업체 앱시트와 물류관리업체 포인트를 인수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이전업체 무저를 사들이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었다.

일부에선 삼성전자의 M&A 시계가 올해 또다시 멈춘다면 미래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2018년 2월 5일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며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대법원 판결과 연이은 파기환송심으로 2년 가까이 최고 경영자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아무리 삼성전자라고 해도 급변하는 기술 변화를 혼자서 따라잡을 순 없다"며 "삼성전자가 지금 올리는 수익도 길게는 10년, 적어도 3~4년 전 투자의 결실인데 지금 삼성전자는 이런 결실을 위해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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