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이 또 죽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2.0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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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총파업 철회 후에도 4명 숨져…예비인력율 7%, '겸배'가 일상 "죽을 맛입니다"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계단을 두 걸음씩 다녀야 하루 일을 겨우 끝낼 수 있는 이들, 그들이 집배원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계단을 두 걸음씩 다녀야 하루 일을 겨우 끝낼 수 있는 이들, 그들이 집배원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집배원'이 또 죽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아이고, 죽을 맛입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문백남 지부장(전국우정노동조합 서울구로우체국지부)은 "잘 지내시냐"는 물음에 그리 답했다. '여전하구나', 실마리 같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뀌었다.

그와는 지난해 여름, 집배원 체험을 함께 했었다. 최근 10년간 집배원 348명이 숨졌는데, 이유가 궁금해 시작한 취재였다.



지난해 여름, 집배원 체험을 할 때 나 또한 계단을 두 걸음씩 올랐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사진=문백남 지부장지난해 여름, 집배원 체험을 할 때 나 또한 계단을 두 걸음씩 올랐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사진=문백남 지부장
그리고 체험이 끝난 뒤, 나간 기사 제목이 이랬다. '집배원이 왜 죽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2019년 7월6일자 참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뒤, 절로 떠오른 제목이었다.



그 무렵 61년만에 총파업을 하겠다던 집배원들은, 약속 하나만 받아낸 채 결국 접었다. 그게 지난해 7월8일이었다. 그 약속이 대단한 게 아녔다. 주 5일 근무를 위한 인력 충원(988명). 누군가에겐 이미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사투를 벌여야 겨우 얻는 거였다.

필요인력 2000명, 충원인력 988명 뿐
집배원들이 파업까지 하겠다며 요구했던 건, 토요택배 폐지, 올바른 노동시간 보장. 어찌보면 참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파업도 차마 못했다./사진=뉴스1집배원들이 파업까지 하겠다며 요구했던 건, 토요택배 폐지, 올바른 노동시간 보장. 어찌보면 참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파업도 차마 못했다./사진=뉴스1
그리고 7달이 지났지만 집배원들 업무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하루 업무량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집배원은 최소 2000명(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추산)인데, 충원해주겠다 한 건 고작 988명이다. 필요한 사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도 새로 뽑겠다 한 건 위탁 배달원 750명 뿐이고, 나머지 238명은 서울 등에서 남는 인력을 지방으로 재배치키로 했다. 이 부분도 "필요한 사람을 빼간다"고 해 논란이 있다.

그런데 그 충원마저 온전치 않다. 이행무 우정노조 노사국장은 "모집도 잘 안 되고 해서, 현장 배치는 덜 된 부분이 있다"며 "1월 말까진 채용해 2월3일부턴 현장 투입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이동 거리가 길어 근무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에서도, 주5일 근무를 할 수 있게 된단다. 이 국장은 "7월1일 시행이 목표"라고 했다. 일정 부분은 나아지게 된다.

예비인력율 7%…'겸배'가 일상
저 종이에 써 있는 이름은 '겸배'를 위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네가 쉬면 저 이름을 가진 동료들이 그만큼 더 고되게 일한다는 것./사진=남형도 기자저 종이에 써 있는 이름은 '겸배'를 위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네가 쉬면 저 이름을 가진 동료들이 그만큼 더 고되게 일한다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그럼 된 걸까. 현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 지부장은 집배원들이 여전히 '겸배(兼配)'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배달 구역이 아닌 곳까지 배달하는 것이다. 통상 한 명이 쉬면, 다른 한 명이 대신 그 사람 구역까지 겸배를 한다. 그러니 연가조차 맘 편히 낼 수 없다. 내가 쉬면, 동료가 개고생하니까.

여하튼, 겸배가 일상이 된 이유는 인력 운영이 빡빡한 탓이다. 퇴직자 등 결원이 생기면 바로바로 보충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단다. 문 지부장은 "지난해 7월1일자부터 충원을 안 해줘서 계속 겸배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예비인력율이 고작 7%, 준비된 인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것도 예전 예비인력율 4%에서 상향해놓은 목표 수치일 뿐, 실제로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새로 생기는 아파트며 단지들 모두 '배달구역'이다. 집배원들에겐 일거리인 셈이다. 그러니 예비인력이 제때 투입될 수 있게끔 넉넉한 운영이 필요한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남의 구역까지 돌아야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조급해진다. 그러니 교통사고가 난다. 문 지부장은 "구로우체국에서만 한 달에 7명이 병가를 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집배원 한 사람의 평균 1일 배달 물량은 약 900통이란다. 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 6분에 달한다. 산재율이 소방관보다 1.5배 더 높다. 다 이유가 있다.

우체국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충남 당진우체국에서 근무 중 과로사로 숨진 고 강길식 집배원(49). 그는 지난달 19일 자택에서 숨졌다.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뇌출혈이었다.고인의 명복을 빈다./사진=뉴스1충남 당진우체국에서 근무 중 과로사로 숨진 고 강길식 집배원(49). 그는 지난달 19일 자택에서 숨졌다.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뇌출혈이었다.고인의 명복을 빈다./사진=뉴스1
궁금할 것이다. 우체국이 돈이 없어서 이러나.

아니다. 일단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우체국 운영은 '일반 회계'가 아니라, '특별 회계'다. 정부가 지원하는 게 아니고,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 운용한단 뜻이다. 그러니 정부 예산으로 인력 지원이 되는 게 아니다.

공공영역임에도 지원은 커녕, 이익이 생길 때마다 일반 회계로 수익을 가져간단다. 그렇게 정부 재정에 기여한 게 현재까지 무려 2조4000억원이나 된다.

그럼 자체적으로 돈을 못 버는 걸까. 아니다. 2017년 기준 우정사업 전체(우편·보험·금융)를 따져보면, 5000억원 흑자였다. 1000명을 늘리는데 약 379억원이 든단다. 충분한 돈이다.

그럼에도 못 쓰는 이유는, 우편·보험·금융이 각각 회계가 달라서다. 우편은 적자고, 수익을 내는 게 보험·금융쪽인데 유동적으로 돌려쓸 수가 없다. 고객자산이란 부담도 있다. 이래저래 묶여 있는 셈이다. 문 지부장은 "법 개정을 통해 특별회계 수익의 일정 비율은, 우편 인력 등 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는 새 집배원이 또 죽고, 쓰러졌다
집배원들은 또 죽을 것이다, 지금 시스템이 제대로 바뀌지 않는다면./사진=뉴스1집배원들은 또 죽을 것이다, 지금 시스템이 제대로 바뀌지 않는다면./사진=뉴스1
부실한 시스템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집배원들 몫이다.

지난 20일 경북 한 우체국에선 40대 집배원이 과로로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당일 오전 8시30분 출근해 우편 분류 작업을 했고, 오전에 2시간 배달한 뒤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쓰러졌다. 배달 물량이 무려 1100통이나 됐단다.

지난번 기사에 이대로면 집배원이 또 죽을 거라 예언했었다. 그게 현실이 됐다. 총파업 합의를 했던 지난해 8월 이후에만 4명의 집배원들이 더 숨졌다. 그렇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집배원만 모두 12명이다. 아파도 참고, 피곤해도 참고, 죽을 것 같아도 참는다. 내가 자릴 비우면, 동료가 그만큼 더 돌려야 하는데,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큰 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난번 집배원 체험기 때 못 적은 게 있다. 숨막히게 빠른 28년차 집배원 장재선씨를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다니다, 자빠졌었다. 코너를 도는데 기우뚱하고 왼쪽 다리가 깔렸다. 땀이 비오듯 흐르는 와중에 아찔해졌다. 이렇게 사고를 당하는구나 싶었다.

집배원들은 또 죽을 것이다. 이 정도론 안 된다. 혹시나 의심간다면 하루만 직접 해보시라.

그러나 진심으로 이 예언이 틀리길 바란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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