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때 '특수' 누린 재계…우한폐렴엔 사업계획 다시 짜나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유영호 기자, 주명호 기자, 이건희 기자 2020.01.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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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때 '특수' 누린 재계…우한폐렴엔 사업계획 다시 짜나


"아직 계열사별로 국내와 중국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단계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가 실적과 사업계획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SK (160,700원 ▼1,400 -0.86%)그룹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현재 수준에서 별다른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에 대한 예단은 어렵다"며 말을 흐렸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물론 정유·화학, 조선, 철강, 항공업계 등 중국과 긴밀한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우한발 사태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그간은 주재원을 불러들이는 등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구성원 '안전' 관련 대응에 주력했다면, 이제 이번 사태가 실적에 '숫자'로 어떻게 반영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한에 촉각 곤두세우는 차·화·정
우한 사태를 가장 예의주시하는 곳은 현대·기아차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추고 연간 100만대 안팎의 차를 현지에서 팔고 있어서다. 현대·기아차 전 세계 판매 물량의 약 12.5%가 중국에서 소화되는 셈이다. 일단 중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만큼 현지 생산과 판매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설비가 없는 정유화학·조선·철강 업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사태에 당장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반응이다. SK종합화학과 포스코가 우한에 사업장이 있지만 양측 파견 직원이 총 2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미 주재원 철수를 진행한 상태다. 다만 정유화학·조선·철강은 거시경제 흐름과 연동성이 큰 산업인 만큼 이번 사태가 글로벌 경기에 어느 정도 타격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유화학은 전 세계적 경기 위축으로 휘발유·경유 소비가 줄고 산업 소재인 화학제품 수요가 위축되면 실적이 둔화된다. 조선은 국제 물동량이 줄어 선박 발주가 감소하면 신규 수주가 줄어들어 선박 건조가 완료되는 2~3년 후 실적 둔화로 반영된다. '산업의 쌀'인 철강 역시 거시경제가 위축되면 타격을 받는다.

항공업계도 우한 사태가 부담이다. 대한항공 (20,800원 ▲50 +0.24%)은 주 4회 운항 중이던 우한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우한 직항은 업지만 전체 취항노선의 40%가 중국 노선이다.

사스 때는 특수도 있었는데...
일단 현재 상황에서 자동차·정유화학·조선·철강·항공업계가 생산과 영업, 실적 전반을 당장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업계에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한 2003년을 예로 든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3년 1분기 11.1%에서 2분기 9.1%로 하락했고 한국의 성장률은 같은 기간 1% 떨어졌지만 포스코와 LG화학의 당시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두자릿수 성장했고 삼성중공업의 신규수주는 93% 급증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사스 영향이 컸던 2분기 거시경제가 위축됐지만 이는 일시적이었고 해당 분기 미뤘던 계약을 이후 진행해 연간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실적 영향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당시 중국 본토 사업에서 오히려 특수를 맞았다. 중국 월간 판매가 2000~3000대 수준이던 현대차 (249,500원 ▲4,500 +1.84%)는 사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4월 판매가 4250대로 껑충 뛰었고 해당 연도에 5만2128대를 팔아 당초 목표 5만대를 넘겼다. 기아차 (115,900원 ▲800 +0.70%) 역시 2003년 판매량이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사스는 당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던 중국인들이 자가용 구매로 눈을 돌리게 하는 물꼬를 텄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물론 SK그룹 등 각 그룹사들이 전략·기획 쪽에서 이번 사태를 아직 사업계획을 수정할 만큼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업계획 다시 짜야하나
그럼에도 우한 사태가 사스 때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우한발 폐렴이 중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장기적으로 확산될 수 있어서다. 아직 현실화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 현지 공장이 올스톱되고 종국엔 전 세계적 성장률이 연간 기준으로도 추락할 수 있다. 이는 업계가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각 기업들은 전략·기획부서를 중심으로 중국 정부 움직임이나 한국 보건복지부 발표 등 동향에 주목하고 있다. 확산 범위와 기간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폐렴의 전방위적 확산이 부담인 까닭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 성장속도 자체가 사스 때 와는 달리 상당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규모 확산으로 비화할 경우 실적도 크게 영향을 받고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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