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은 왜 사모펀드에 방아쇠를 당겼나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20.0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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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시장 충격]멀쩡하던 알펜루트운용까지 유동성 '빨간 불'

증권사들은 왜 사모펀드에 방아쇠를 당겼나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 불똥이 알펜루트자산운용으로 튀었다. 알펜루트운용의 유동성에 빨간 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자 일부 증권사가 황급히 자금을 빼면서 펀드런으로 확산할 분위기다. 증권사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이 정보 비대칭성을 활용해 투자자보다는 자사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알펜루트운용은 이날 만기인 2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장은 20억원 규모지만 펀드런이 발생할 경우를 우려해 1800억원 규모 개방형 펀드 전체에 대한 환매 연기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알펜루트는 이와 관련, 이날 펀드 회수기일과 자산내역 등에 대해 투자자와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별도의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라임에 이어 알펜루트까지 펀드 환매를 연기하게 된 배경은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들이 TRS(총수익스왑) 계약을 거둬들이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미래에셋대우가 만기가 돌아온 100억원대 TRS 대출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뒤이어 한국투자증권도 약 200억원대 대출에 대한 조기상환요청을 하고 나섰다. 한투증권은 이 과정에서 자사 상품팀 등에 알펜루트운용이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알려 미리 대비케 한 것으로 전해졌다.

TRS 계약은 증권사가 펀드 자금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 계약이다. 통상 레버리지를 2배 일으킬 수 있다. 운용사가 100억원 규모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면 증권사가 100억원을 추가로 태워 펀드를 총 200억원 규모로 만들어주는 식이다.



증권사와의 TRS 계약을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수익률은 물론, 펀드 자산도 2배로 키울 수 있어 라임, 알펜루트 등 사모 운용사들이 덩치를 키울 때 활용해왔다.

TRS 계약은 증권사에게 더 유리하다.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데다, 대출인만큼 투자자보다 우선상환권이 있다. TRS 담보비율이 50%라면 100억원이었던 펀드 자산이 50억원으로 쪼그라들어도 증권사는 손해보지 않는 구조다.

이에 증권사들은 경쟁적으로 PBS 사업에 뛰어들어 TRS 계약을 맺어왔다. 사모펀드 시장이 잘 나갈 땐 서로 윈윈(WIN-WIN)했지만, 라임 사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비유동성 자산을 많이 담는 대신, 고수익을 추구해왔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에서 최근 6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관련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에서 최근 6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관련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그러나 라임 사태를 계기로 비유동성 자산을 담은 개방형 펀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개방형 펀드는 언제든 환매요청에 대응해야 하는데, 라임은 자산 자체에 유동성이 적은 만큼 증권사 TRS 계약을 통해 환매에 대응해 왔다. 그러다 라임 상태를 심상치 않게 본 증권사가 TRS 계약을 해지하자 바로 펀드 유동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 '증권사 TRS 계약 해지→유동성 악화→자산 저가매각 혹은 환매연기→수익률 악화→투자자 손실'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알펜루트운용도 펀드 내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성격을 띠는 금융상품) 비중은 7%에 불과하지만 개방형 구조라는 이유로 불안을 느낀 증권사들이 유동성 공급을 일제히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TRS(총수익스왑) 계약을 활용해 규모와 수익률을 키워온 사모 운용업계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업계는 메자닌, 사모사채, 프리IPO 투자를 골고루 하는 멀티에셋전략 펀드면서 펀드당 설정액이 1000억원을 넘어 덩치가 큰 펀드들이 TRS를 많이 활용했을 것으로 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알펜루트운용은 부실자산을 담지도 않았고 수익률도 좋아 이미지도 괜찮았다"며 "이번 사건으로 증권사들이 개방형 사모펀드에 대한 TRS 계약을 모두 해지할 까봐 업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기본적으로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데 요새 투자자나 증권사나 저위험, 고수익을 바랐던 것 같아 씁쓸하다"며 "특히 최근 사모운용사들의 유동성 부족이 TRS 계약 해지로 촉발되는 만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증권사들의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TRS 계약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들이 가능한 업무영역이다.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종금증권 등 8곳이 가능하지만, 이중 메리츠종금증권과 하나금융투자는 해당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6곳이 19개 자산운용사에 대해 2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의 TRS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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