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관]이해찬의 ‘진짜’ 데스노트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20.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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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이 되면 이해찬 대표도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지율도 떨어질 것이고, 공천잡음에 당이 시끄러울 것입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한지 100일 즈음인 2018년 12월에 썼던 기사(‘이해찬의 데스노트’ 머니투데이 보도참조)를 본 한 취재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 기사엔 총선 공천권을 가진 이 대표가 ‘그립’을 더욱 세게 잡고 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원 평가시스템 등 나름 체계적으로 공천을 관리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취재원은 당시 “선거를 1년 이상 남겨둔 상황에선 그 어떤 예측도 의미없다. 지금 이 대표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며 “2020년이 되면 아마도 당이 시끄러울 것”이라고 했다. 그 취재원은 민주당에서 국회 보좌진 역할만 10년 넘게 한 베테랑이었다.



21대 총선이 80일 앞으로 다가온 2020년 1월말. 총선이 두달 넘게 남았기 때문에 아직 알 수 없으나, 현재 상황만 보면 그의 전망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 취재원은 과거 선거철만 되면 나왔던 민주당의 계파 갈등이나 탈당 등 사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지난해 말부터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당당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나오고, 인재영입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공천 관련 의원평가 하위 20% 명단 지라시가 나와도 큰 동요가 없다. 당 지지율은 견고하다. 2018년 12월 첫째주 38%(리얼미터 기준)였던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 23일 기준 40.4%를 기록했다. 보수통합 등 이합집산 과정에서 안갯속에 빠진 보수 야당에 비하면 태평성대 그 자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이 대표의 ‘아픈 경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하고 당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대표를 잘 아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토대로 무조건 중진이라고 함부로 나가라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나갈 사람이 있다면,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가 취임 이후 신경쓴 게 공천 기준이 되는 ‘의원평가 시스템’”이라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만들라고 지시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 이상 차근차근 준비한 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아빠 찬스’ 논란이 일었던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씨가 4월 총선 출마를 포기한 게 대표적이다. 공천 관리에 허점이 있거나 중심을 잡지 못했다면 시끄러웠을 문제가, 당이 공정한 잣대를 갖고 명확한 지침을 밝혀 헤프닝으로 끝냈다.

하지만 지금까진 연습이었다. 실전은 이 대표의 데스노트가 열리는 오는 28일부터다. 원혜영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이날 하위 20% 의원(약 20명)에게 개별적으로 결과를 통보한다. 여기에 포함된 의원들의 반발을 얼마나 잠재우느냐에 따라 이 대표의 리더십에 힘이 실린다.

또 지역구 예비후보자들간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만 당의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의 데스노트가 열려도 큰 동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공공기관장 임기(3년)가 이제 곧 끝나기 때문이다. 총선 불출마 혹은 경선 탈락 인사들에게 기관장 자리는 퇴로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공공기관 낙하산’이란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수 있지만 어쨌든 공천과정에서 예전처럼 당이 깨지거나 시끄럽진 않을 거란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민주당 분위기가 자칫 총선을 안일하게 준비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비후보자들간 경선 과정에서 능력있는 인재들이 등용되는 등 치열한 경쟁이 있어야 흥행이 된다. 경쟁을 하다보면 파열음도 나온다. 이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에 뛰는 선수든 지휘하는 감독이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한다. 축구 경기에서 가장 억울한 건 전후반 90분간 이기고 있다가, 경기 끝나기 직전 긴장이 풀려 인저리 타임에 역전당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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