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과 재혼한 며느리가 먼저 간 내 아들 연금을…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01.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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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미국인과 재혼해 연금 받을 자격 없는데도 6500만원 수급

/사진=뉴스1/사진=뉴스1


며느리가 재혼한 뒤에도 숨진 아들의 유족연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노부부가 뒤늦게 연금수급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공무 중 숨진 군인 A씨의 부친 B씨가 "아들의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달라"며 국군재정관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육군 소령으로 근무한 A씨는 1992년 공무 중 사고로 순직했다. A씨의 유족연금은 군인연금법에 따라 아내에게 지급됐다.

법에 따르면 군인의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는 자녀에게 1순위, 부모에게 2순위로 주어진다. 배우자는 이 중 우선 순위인 사람과 동등한 순위가 주어진다. 그래서 아내가 A씨 아들과 동등한 순위에서 연금수급권을 행사한 것이다.



A씨가 숨지고 14년 후 아내는 미국인과 재혼했다. 아들은 2009년 10월 만 18세가 됐다. 군인연금법에 따르면 재혼한 배우자와 만 18세가 된 자녀는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 즉, 아내가 누리던 연금 우선순위는 아내가 재혼한 시점에서 아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아들이 18세가 된 시점에서 우선 순위는 다음 순위자인 A씨의 부모가 넘겨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아내가 재혼하고 나서도 계속 유족연금을 받았다는 점이다. A씨의 부모는 2016년 6월에서야 연금수급권을 돌려달라고 재정관리단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손자(A씨 아들)로부터 권리를 넘겨받은 게 2008년인데, 그로부터 소멸시효 5년이 지나 더 이상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A씨 부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부모는 며느리(A씨 아내)가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야 재혼한 줄 알았다면서 연금수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이미 소멸시효 5년이 지나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모의 연금수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A씨 부모가 없던 연금을 새로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나라에서 지급되고 있던 연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A씨 부모가 연금수급 신청을 따로 내지 않았더라도 자동적으로 권리를 넘겨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연금수급권은 매달 지급되는 연금마다 따로따로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족연금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국가가 유족에게 이행해야 하는 채무라는 판단에 기초한 판결이다. 이를 토대로 대법원은 A씨 부모가 연금수급을 요구한 2016년부터 거슬러 5년 동안 며느리가 받은 연금은 A씨 부모 몫이므로 군 당국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군은 A씨 아내에게 부정 수급한 연금 6500만원을 환수하겠다는 통지를 보냈다. A씨 아내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패소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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