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1일 국무회의에서 5%룰 관련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오전 제1차 임시 금융위를 열고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원안유지 의견으로 의결했고, 이후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를 거쳤다.
이번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오는 2월 1일부터는 기관투자자가 임원 선·해임 등 경영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 아니라면 ‘경영 참여 목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 배당 요구,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등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제외된다. 또 5% 룰의 상세보고 대상이 명확해지고, 지분 보유목적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 △일반투자 △단순투자 등 3단계로 나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는 상장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대량보유)하게 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변동이 있는 경우 관련 내용을 5일 이내 보고?공시해야 한다. 단 주식 등의 보유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경우 보고기한 연장 또는 약식보고가 가능하다.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임원의 선·해임 △정관의 제·개정, 배당 등을 위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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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준다’는 표현의 모호성으로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에 제약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또한 대형 연기금이 지분변동 내역을 신속하게 공시해 이에 따른 추종매매 우려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회사·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 등 상법상 권한행사와 단순한 의견표명, 대외적인 의사표시도 제외했다. 또한 공적 연기금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라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정관변경도 제외한다. 다만 금융위는 “정관변경이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겨냥하거나 특정 임원의 선·해임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약식보고 대상인 ‘경영권 영향의 목적이 없는 주주활동’은 일반투자·단순투자로 구분했다. 일반투자의 경우 △임원 보수 △배당 등에 대한 제안을 적극적인 유형의 주주활동으로 규정하고 공적 연기금은 월별, 일반투자자는 10일 내(신규 5일) 약식으로 보고토록 했다. 단순투자는 의결권만을 행사하는 경우로 한정해 공적 연기금은 분기보고, 일반투자자는 월별보고(신규 5일)를 약식으로 보고하게 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선진국에서는 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이려는 것과 기업의 지배권은 별개로 본다"며 "이번 개정안 통과로 우리 시장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다가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개정안에 반대해왔던 재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5%룰’ 완화는 정부가 추진 중인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도입과 맞물려 경제계에 큰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시의무를 벗은 공적연기금이 기습적 지분 매집을 통해 정관 변경, 임원 해임, 배당 요구 등 사실상 기업 경영 영역에 공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는 313곳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제계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경영 간섭을 내용으로 하는 시행령 개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연기금이 경영 참여 선언 없이 정관변경 요구, 임원의 해임청구 등을 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가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투기자본 공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적연기금의 탈을 쓴 해외 투기자본이 ‘5%룰’ 완화 규정을 악용해 경영 전반에 깊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사실상 경영의 영역인 기업 이사 선·해임, 정관 변경 등을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라면서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등에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일각에선 ‘5%룰’ 완화와 관련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중립성 문제도 제기한다. 정당한 주주권 행사는 장려돼야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등 공적연기금 운용의 틀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핵심 관계자는 “국민연금만 해도 기금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이 사실”이라며 “여러 여건을 감안했을 때 ‘5%룰’ 완화는 취지와 달리 기업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정부가 기업을 길들이기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