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독자 파병'…미국·이란 관계 모두 챙겼다

머니투데이 권다희 , 김평화 , 김성휘 , 박종진 , 정진우 기자 2020.01.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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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호르무즈 독자 파병'…미국·이란 관계 모두 챙겼다


'호르무즈 독자 파병'…미국·이란 관계 모두 챙겼다





정부가 21일부터 아덴만에 파견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넓혀 호르무즈 해협 항행을 지키는 사실상 '독자파병' 카드를 택한 건 국익을 챙기면서도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와의 관계를 감안한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미국-이란 사이 딜레마, 해답은 '독자파병'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외교적 '절충안'이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국제사회에 미국의 'IMSC(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연합)' 참여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올해 초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미국에 의해 사망하며 중동지역에서 미-이란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연합체에 참여한다면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 지역 안보협력에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마냥 불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우리 군함의 독자적 파견 형식으로 중동 안보협력에 동참하는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일본 역시 미국 주도 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 1대(병력 260여명 규모)를 중동해역에 독자 파견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을 앞두고 미국·이란과의 외교적 소통도 각각 이뤄졌다. 국방부는 미국 국방부에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했고, 미국 측은 한국의 결정을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국방부는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ISMC 본부에 연락장교로 파견하기로 했다. 동시에 우리측은 이란측에도 외교경로로 이 같은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한국 결정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자국의 기본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략적 요충지 호르무즈, 보호 수단 생겨

정부는 이 같은 절충안으로 중동지역의 군사적 위협에서 국민과 우리 선박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정부는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전 및 선박 항행 안전'을 파병 결정의 최우선 목표로 밝혀 왔다. 중동 지역에는 약 2만5000명의 우리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일대는 우리 원유 수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우리 선박 통항 횟수는 연 900여 회다.

이와 관련, 기존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 변경안은 현실적 절충안이기도 하다. 미국·이란과의 외교 관계 및 우리 국민 보호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카드란 얘기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 선박의 항행 안전을 지켜야 할 필요도 커졌지만, 이 지역의 군사적 위험성이 높아져 국회 비준이 필요한 새로운 파병은 불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해부대 작전 지역 변경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해 왔다. 청해부대는 중동지역 우리 국민을 대피시켜야 할 상황이 발생할 때 수송선 역할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중동지역 일대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항행의 자유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유사시 우리 국민과 선박 보호, 안정적 원유 수송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결정이 한미간 다른 현안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파병 결정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남북협력 추진 구상과 연계돼 있느냐는 질의에 "명백하게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6일에도 "어떤 제목 하에서도 호르무즈 파병이 방위비 협상에서 논의된 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세종=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1.21. dahora83@newsis.com[세종=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1.21. [email protected]
②'제2 사드 사태' 막아라..文대통령 호르무즈 고심 지점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다." (2011년 '운명', 이라크 파병에 대해)

호르무즈 파병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지점은 "종합적 고려와 현실적 방안"으로 압축된다. 특히 호르무즈 관련 결정을 제2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고민이 컸던 걸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도 경험이 됐다.

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파병 여부 결정에 고려할 4대 요소를 꼽았다.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과 교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 원유 수급 등 에너지 수송 문제도 검토대상이다. 한미 동맹, 한-이란 외교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난 정부의 사드 국내배치 결정과 그 파장이 큰 타산지석이 됐다. 강력한 양대 세력의 충돌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안보적 입장을 정리하고 이 같은 결정을 양쪽 모두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사드 배치 때와 같다. 4대 요소 중 교민안전, 경제파장, 한미관계는 똑같고 한중 관계만 한-이란 관계로 바꾸면 동일하다.

IMSC(국제해양안보구상), 이른바 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여하는 건 미국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다. 이란의 반발과 이에 따른 우리 교민 위험이 부담이었다. 반대로 파병에 불응하면 북미 대화뿐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간 산적한 과제에도 연쇄적 영향을 줄 걸로 우려됐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은 절묘한 3각 절충이었다. 첫째 미국의 요청에 호응하는 메시지다. IMSC와 협력할 여지도 열어 뒀다. 호르무즈 자유항행에 보탬이 된다는 국제적 명분도 쥐었다.

둘째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으로 직접 편입되는 것은 피했다. 이란과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 9일 국회에 출석, "미국과 우리 입장이 정세분석과 중동지역에서의 양자 관계 등을 볼 때 꼭 같을 순 없다"고 말했다.

셋째 기존 부대의 작전 확대는 국내 논란을 의식한 결과다. 청와대,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제히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비준동의 필요성 문제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국회 안팎에서 논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부가 처음부터 국회 동의를 받아야하는 신규파병을 내밀었다면 극심한 갈등을 자초하는 꼴이다. 총선을 앞둔 여론 영향도 고려대상이다.

파견 자체는 우리 국민 안전확보라는 명분이 컸다. 이에 작전확대든 파병이든 '보낸다'는 쪽이 우세했다. 2018년 4월, 아프리카 가나 해역서 한국인 선원이 탄 배가 해적에 피랍됐을 때 문 대통령은 청해부대를 급파해 이들을 구출했다.

2018년 7월 리비아에서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던 우리 국민은 피랍 315일만인 지난해 5월 석방됐다. 그때까지 정부가 구명 노력을 기울였다. 문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구축한 아랍에미리트(UAE) 모하메드 왕세제의 지원도 받는 등 전방위 노력이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이라크 파병 결정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파병을 마땅치 않아 했으나 북핵 해결을 위해 미국 협조가 절실했다"고 썼다.

NSC(국가안보회의) 사무처 이종석 차장이 △파병요구를 받되 △규모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투가 아니라 재건작업으로 성격을 규정한다는 제안을 냈다. 문 대통령으로선 당시 의사결정에 참여한 경험이 '호르무즈'를 보는 중요한 관점이 된 것이다.

(서울=뉴스1) = 지난해 12월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은 함정 승조원을 비롯해 특수전(UDT)장병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헬기(LYNX)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30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과 1월 중순에 임무를 교대하여, 2020년 7월까지 약 6개월 동안 파병임무를 수행한다. (해군 작전사령부 제공) 2019.12.27/뉴스1 (서울=뉴스1) = 지난해 12월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은 함정 승조원을 비롯해 특수전(UDT)장병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헬기(LYNX)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30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과 1월 중순에 임무를 교대하여, 2020년 7월까지 약 6개월 동안 파병임무를 수행한다. (해군 작전사령부 제공) 2019.12.27/뉴스1
③청해부대 파병은 국회 동의 없어도?…보수도 결정 자체는 'OK'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 논란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 야당은 파병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절차를 문제 삼는다.

여당은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의 작전지역 '변경'보다 '확대'로 해석하면 국회 비준 문제 시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방부로부터 작전 지역을 일부 확대해서 파병하는 내용의 보고를 받았다"며 국회 동의절차가 필요 없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비준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김성원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파병 결정과정에서 제1야당이 철저히 배제된 점은 유감이며 ‘파견지역·임무·기간·예산 변동 시 국회 비준동의 절차’에 따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백승주 의원은 "지난해 7월 국방부에 ‘파견지역·임무·기간·예산 변동 시 국회 비준동의 절차’ 서면 질의를 보내 청해부대의 정원과 임무 등을 변경할 때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헌법 제60조2항에는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 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됐다.

권성주 새로운보수당(새보수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첨예한 사안들이 얽혀 있는 만큼 국회 동의를 얻는 절차는 있어야 했고 시간적으로도 가능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 국회 동의를 받은 청해부대의 파견연장 동의안 내용을 변경하지 않으면 또 다시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날 "청해부대의 아덴만 파견 당시 문건을 보면, 유사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역에 파견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것은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절차 논란과 별개로 파병의 필요성에는 보수 야당들도 동의한다. 김성원 한국당 대변인은 "2만5000여 명에 이르는 교민의 안전, 원유 수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 등을 감안할 때 호르무즈 파병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성주 새보수당 대변인은 "국민 안전과 선박 자유항해 보장, 한미동맹, 대이란관계 등 민감한 사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부의 고뇌를 알기에 이번 청해부대 작전지역 확대 결정 자체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부가 아덴만에 파견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넓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을 지키는 '독자 파병' 카드를 택한 건 '국민 보호'란 최우선 과제를 지키면서도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와의 관계를 감안한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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