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자이언트' 잃은 재계의 슬픔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2020.0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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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유독 한국 재계에 슬픈 계절이다. 한국 경제의 토대를 쌓은 재계 1~2세대들의 부고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다. 한국전쟁 이후 황무지와 같던 한반도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이어서 더 그렇다.

특히 지난 19일 타계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명예회장)는 '유통 거인'이었던 만큼 그 빈자리는 더 커보인다. 5대 그룹 창업주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사실 신 명예회장이 일궈낸 롯데는 다른 대기업들과는 또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시대를 앞서 '글로벌 사업'을 일궜다. 더욱이 '한-일 셔틀 경영'은 특수한 역사 이슈 등으로 난관이 많았지만 이를 극복해내고, 양국은 물론 전세계로 영토를 확장했다.

중후장대 사업이 아닌 껌 등 작은 제과 사업부터 단계를 밟아나가다보니 '짠돌이 대기업' 이미지를 갖기도 했지만 오히려 실속이 컸다. 신 명예회장의 '거화취실'(화려함을 멀리하고, 내실을 지향함) 경영 철학은 여러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저력을 보이며 치고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제는 식품부터 유통·호텔은 물론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말년에야 경영권 분쟁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전까지 수십 년을 은둔의 경영인으로 지내면서도 현장을 수시로 찾았다. "사람들이 잘 몰라보니 더 자주 현장을 찾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한다.

한자어 일색이던 회사명과 달리 당시 다소 파격적이면서 문학적인 회사 이름, 롯데('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옴)처럼 요즘 말하는 라이프 트렌드를 주도하는 역할도 했다.

먹고 살기에도 바빴던 시절 롯데리아 햄버거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일구고, 도심에 놀이공원(롯데월드)을 열며 백화점·호텔·대형마트·온라인 사업으로 대중들에게 다양한 선진 문화 체험기회를 제공했다. 신 명예회장의 평생 숙원사업이자 국내 최고층으로 지어진 '롯데월드 타워'도 대한민국 건설사(史)에 있어 큰 성과다. 신 명예회장은 말그대로 '롯데 자이언트'(거인)였다.


그러나 슬픔이 멈출지는 장례식 이후를 지켜봐야할 거 같다. 여전히 '형제의 난' 트라우마와 여진이 남아있어서다. 신 명예회장의 1조원 개인 재산 상속 향배를 두고도 여러 시나리오가 떠도는 상황이다. 일단 빈소에서 신동빈-신동주 두 형제간 화해 조짐도 엿보인다. "기업이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던 창업주의 유지를 되새겨 봐야할 시점이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롯데와의 추억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롯데가 제2의 창업 의지로 한국 사회에 공헌하며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현명한 길을 닦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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