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전체 상장사 1939곳('금융사 지배구조법'에 의해 사외이사 재직 연한이 제한되는 금융업종 제외) 중 약 30%, 전체 사외이사 3745명 중 19%에 달하는 규모다. 전체 상장사 10곳 중 3곳은 적어도 1명 이상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하는 셈이다.
안철수 전 국회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안랩 역시 사외이사 3명이 모두 임기 제한에 걸린다. 자산규모 1000억~2조원 규모의 중견기업 중에서도 헬릭스미스, 제일약품, 일양약품, 바텍, 영흥철강, 우리바이오, 평화정공, 현우산업, 해성산업 등 상당수가 적어도 3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해야 한다.
문제는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외이사를 새로 뽑으려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를 물색한 뒤 추천위의 심의를 거쳐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는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2달여 앞으로 다가온 정기 주총까지 시간이 빠듯하다.
게다가 국내에선 해외와는 달리 전문가 인력 풀이 적어 사외이사로 선정할 만한 인물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시장 지배력이 몇몇 기업에 집중돼 있어 대기업 집단 몇개가 상장사 상당수를 갖고 있는 구조"라며 "그 몇개 기업집단에서 사외이사 나눠먹기를 하면 남는 건 교수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코스닥 업체 대표는 "인력풀이 충분한 대기업에 비해 우리는 사외이사 한 명을 뽑을 때도 상당한 고생을 한다"며 "실력과 업계 노하우를 겸비해 회사 경영에 조언을 해 주고, 실제 사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외이사 근무연수 제한의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오랜 기간 우리의 사업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차라리 정부가 각 협회와 상의해 인재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상장사들의 반발은 거세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비현실적인 규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박한성 상장회사협의회 선임연구원은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규제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한 회사에서 오래 재직한 사외이사가 이번 규제로 인해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는 경우 회사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오히려 "사외이사의 품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 충원이 다급해진 기업들의 수요가 몰리다 보면 인력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단기 알바처럼 짧게 이름만 올리고 떠나는 철새형 사외이사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외이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상법에 따르면 사외이사 선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에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다.
개정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내 현실을 감안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선 코스닥협회의 전무는 "사외이사 제도와 관련한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며 "예컨대 자산이나 매출규모가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거나 중소기업 예외규정을 두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