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찾는 묘지…3억 뜯어낸 '가짜 유족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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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무연분묘 공고 과정에서 '가짜 유족' 행세하고 보조금 뜯어내

/사진=픽사베이/사진=픽사베이


무연분묘란 연고가 없는 분묘, 즉 누가 묻혔는지 모르는 이름 없는 분묘를 말한다. 무연분묘는 오랜 기간 찾는 이 없이 방치됐더라도 함부로 이장할 수 없다. '분묘기지권'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묘기지권이란 남의 땅에 세워진 분묘라도 오래된 것이라면 분묘와 주변 땅을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권리를 뜻한다. 찾아줄 사람 없는 묘라고 생각해 옮겼는데 나중에 누군가 나타나 분묘기지권을 주장한다면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해 무연분묘를 이장하려면 장사법에서 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장사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토지 소유자는 지방자치단체장 허가를 받아 자기 승낙 없이 설치된 묘지를 옮길 수 있다.



분묘를 옮기려면 분묘를 설치한 사람 또는 분묘에 묻힌 망자의 연고자를 찾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적어도 3개월 동안 연고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표지목과 현수막을 설치해놓는 것이 보통이다. 성묘하러 산을 오르다 보면 '무연고 분묘 개장 공고'라는 제목의 현수막이 종종 보이곤 하는데, 이 장사법 규정에 따라 설치된 현수막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무연분묘는 연고 없이 오랜 기간 방치됐기 때문에 연고자나 관리자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공고 절차로 넘겨진다. 장사법 시행규칙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최소 3개월 동안 중앙일간신문을 1곳을 포함해 일간신문 2곳에 연고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공고를 올려야 한다.

공고는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에 낼 수도 있다. 단, 공고는 2회 이상 내야 하며 둘째 공고는 첫째 공고로부터 40일 이후에 내야 한다. 공고 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분묘를 옮길 수 있다. 분묘에 묻힌 유해는 화장 후 10년 간 봉안됐다가 시설에 뿌려지거나 자연장된다.


이 절차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개발사업을 위해 무연분묘를 옮기려 할 때도 같다. 이 과정에서 연고자가 나타나 무연분묘가 유연분묘가 될 경우 분묘를 옮기는 대가로 분묘이전비와 보조비 등이 지급된다.

문제는 이 이전비를 노린 범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무연분묘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묘이기 때문에 거짓 권리를 꾸며 이전비를 가로채더라도 적발이 쉽지 않다.

실제로 1년 동안 무연분묘 18기를 옮긴 것처럼 가짜 서류를 만들어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속이고 보상금 4980만원을 챙긴 A씨가 2018년 12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LH 직원이 브로커와 짜고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었다. 2012년 당시 LH 직원이었던 김모씨는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개발지구 내 무연분묘 81기의 위치정보를 브로커에게 넘기고, 분묘 무단 발굴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26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브로커들은 지인들을 모아 가짜 유족 행세를 시키고 LH를 속여 이전보상금으로 총 3억50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브로커들은 김씨에게 넘겨받은 정보로 가짜 서류를 꾸며낼 수 있었다고 한다. 법원은 김씨와 브로커는 물론 범행에 가담한 30여명에 대해 무더기로 실형을 선고했다.

무연분묘인 줄 알았던 분묘가 유연분묘로 바뀌게 되면 지자체가 보상해야 하는 부담금이 크게 불어난다. 앞서 말했듯 무연분묘라는 특성 때문에 범행 적발도 쉽지 않아 집중 단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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