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13년 근무 레전드 트로이카의 은퇴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1.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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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윤부근  CR담당 부회장, 신종균 인재개발담당 부회장(사진 왼쪽부터).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윤부근 CR담당 부회장, 신종균 인재개발담당 부회장(사진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윤부근 대외협력(CR)담당 부회장, 신종균 인재개발담당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 3인방(트로이카)이 현직에서 은퇴했다.

이들 트로이카는 2017년 말 인사에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이번엔 회사의 공식직책까지 내놓고 고문 자리로 옮겼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후배들에게 경영을 넘기고, 조언자 역할로 남게 됐다.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각각 35년, 42년, 36년 등 합쳐서 113년을 근무한 베테랑들의 은퇴다.



1969년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의 역사를 보면 초기 강진구 사장 시절을 거쳐 김광호 부회장대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원톱 체제에서 삼성그룹이 커졌으며 이병철의 시대에서 이건희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투톱이나 트로이카 경영자 시대가 열렸다.

과거 동양의 작은 가전업체였던 삼성전자는 1기 트로이카 시대인 윤종용(CEO, 가전) 이윤우(반도체, 황창규) 이기태(정보통신) 시절에 삼성전자를 글로벌 톱 기업의 반석 위에 올리는 기틀을 마련했다.



뒤이어 이윤우 부회장이 CEO로 올라가면서 반도체 권오현, LCD(액정푯장치) 이상완, 가전과 정보통신 최지성 사장까지 합쳐 4룡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최지성 사장이 사업부를 맡으면서 TV에서 소니를, 휴대폰에서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라는 성과를 발판으로 급성장해 투톱의 시절인 부품과 세트로 나뉘던 시대를 맞았었다.

이 시기는 아이템별로 나뉘어 있던 삼성전자의 사업분야가 부품과 세트 두 부문으로 나눈 과도기적 상황으로 이윤우 최지성 투톱이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하던 시절이다.


권·윤·신 트로이카 시대 5년간 영업이익 85% 늘어
이들의 뒤를 이어 최지성 대표 단독 체제에서 그가 미래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2012년부터 3부문장 체제로 전환해 2017년까지 5년간 삼성전자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이 체제가 되면서 반도체 권오현(CEO), TV 가전 윤부근, 휴대폰 신종균의 시대가 본격화됐다. 삼성전자는 트로이카 체제의 균형과 경쟁 속에 급속한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장기화된 와병 상황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바통을 이어받은 시기다.

초고화질 TV에 이은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에 더해 반도체의 초격차 기술의 성과는 삼성전자의 레벨을 확실한 글로벌 톱 기업의 반열에 올려놨다.

이들이 이끌던 2012년에 매출 201조 1000억원, 영업이익 29조 500억원에서 2017년 매출 239조 5800억원에 영업이익 53조 6500억원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각각 19.1%와 84.7%의 급성장이다. 특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던 2017년은 직전해인 2016년 매출 201조 8700억원에 영업이익 29조 2400억원에서 퀀텀 점프한 시기다.

이들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018년에 기록한 매출 243조 7700억원에 영업이익 58조 89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하는 씨앗을 뿌린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다.

초격차 이룬 경청의 달인 권오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제공=삼성전자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제공=삼성전자
권오현 회장(68세)은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에 성공한 개발팀장으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이어가고, 메모리 중심이던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를 사업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권 회장은 기자와 만날 때마다 "이건희 회장께서 메모리 다음의 먹거리로 10년, 20년 후를 먹여 살릴 시스템반도체에 적극 투자하라"는 지시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에도 적극 투자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2011년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스마트카드IC, MP3플레이어용 시스템온칩(SoC), 내비게이션용 프로세서, CMOS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2010년 스마트폰용 AP 부문에서도 1위에 올려놨고, 메모리의 격차는 더 확실한 1등의 자리로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권 회장은 '오래 일만 하는 사람'은 싫어했다. 워크스마트를 통해 휴식을 통해 창의적 사고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항상 토론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경청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치열하게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되, 그 과정에서 나태한 자세를 갖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토론을 통해 항상 해법을 찾고, 외부인들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외부의 가치를 내부로 전달하는데 힘써왔다.

TV 세계 1위 만든 약국집 아들 카리스마 윤
윤부근 부회장윤부근 부회장
1970년대 당시 울령도의 유일한 '약국집'의 아들이었던 윤부근 부회장(67세)은 뭍으로 나와 전자공학이라는 물, 특히 TV에 빠져 세 사람 중 가장 오랜 기간인 42년을 삼성전자와 함께 했다.

그는 1978년에 입사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지난 2018년 입사 40주년을 맞았고, 그 후에도 삼성전자의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으로서 대통령 수행 등 전세계를 다니며 활동을 이어왔다.

앞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에 오른 뒤 2008년 전후로 '크리스털로즈TV'와 '보르도TV' 등 프리미엄 TV 흥행작을 잇따라 출시하며 삼성전자 TV가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난공불락의 벽으로 여겼던 소니를 제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후 초고속 승진해 3D TV와 LED TV, QLED TV 등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앞서 이끌어 TV왕국을 건설해왔다.

윤 부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카리스마로 TV 부분 조직을 이끌어왔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각 사업부문별로 조직문화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적 문화가 강한 반도체 사업부가 토론형이라면, 일본 영향을 크게 받은 가전과 TV는 일사분란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차이가 있는데 윤 부회장이 이런 리더십이 뛰어났다.

TV와 가전부문은 다소 자유분방한 반도체와는 달리, 상하의 조직문화가 탄탄하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으로 이를 잘 통솔하느냐가 조직관리의 성패를 좌우한다. 윤 부회장이 앞서 맡았던 최지성 실장의 뒤를 이어 조직장악력이 뛰어났고, 사석에서도 좌중을 휘어잡는 언변으로 자리를 리드하곤 했다.

364일 일한 워크홀릭 신종균
신종균 부회장신종균 부회장
신종균 부회장(64세)은 에코전자와 맥슨전자 등 중소기업을 거쳐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36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쳤다.

신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도 대표적인 워크홀릭 엔지니어다. 기자가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삼성 사장단 등의 누군가의 상가(喪家) 등에서 만나거나, 해외출장을 갔다가 국내에 하루 체류하고, 다시 출국하기 직전 집 앞의 식당 정도다.

식당에서 잠시 잠을 내 만나면 "곧 출장을 떠나야 하는데 세탁할 옷만 집에 맡기고 새 짐을 챙겨 출장을 떠난다"고 할 정도로 일에 올인했던 스타일이다.
개발통이기도 한 신 부회장은 1000만 대 이상 팔린 삼성전자의 '이건희폰'과 '벤츠폰'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1년에 하루(신정)에만 쉬고 364일을 일했다고 하는 그를 직원들이 좋아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런 열정이 전쟁 후 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의 휴대폰이 전세계 최고의 폰으로 주목받는 결실을 이끌어냈다.

사석에서 만나면 소문난 '일벌레'라는 캐릭터와는 달리 조용조용한 목소리에 다소 내성적으로 보일 정도의 모습이지만, 일에 임할 때는 끝까지 파고들어 결과를 보고 마는 성격이다.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으로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1위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성가도 보였다.

합쳐서 113년을 삼성전자에서 일한 이들 트로이카의 은퇴가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 남은 열정으로 대한민국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조언자로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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