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가계도 /사진=김현정 디자인기자
신 명예회장은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신영자 이사장은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 건너간 시기에 태어났다. 때문에 신 명예회장은 노씨와 신영자 이사장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일본명 시게미쓰 히로유키, 重光宏之)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시게미쓰 아키오, 重光昭夫)이 두 사람 슬하의 자식이다. 두 사람은 유년 시절 일본에서 자랐다.
신 명예회장은 2015년 신동주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편에 서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은 그룹내 이사직에서 물러나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한·일 국교가 수교된 이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국내 복귀한 신 명예회장은 1970년대 하이틴 스타 서미경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신 명예회장과 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 명예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형제들도 경영에 참여 시켰으나 잦은 불화를 빚었다. 2남 고(故) 신철호 롯데사장의 경우 1950년대 회삿돈 횡령 의혹으로 구속되며 사이가 멀어졌다.
3남 신춘호 농심 회장은 라면 사업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진 경우다. 신춘호 회장이 1965년 한국에 돌아와 라면사업에 진출했는데, 신 명예회장이 "시기상조"라며 말렸다.
그런데도 신춘호 회장은 고집을 꺽지 않았고 신 명예회장은 "롯데라는 사명을 쓰지 말라"고 일갈했다. 신춘호 회장은 사명을 '농심'으로 정한 뒤 신 명예회장과 수십년간 왕래를 끊었다.
신 명예회장은 5남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도 관계가 좋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부동산 실명제가 시행되며 토지 분쟁을 벌였다.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그룹 로고를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