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껌사업→韓 123층 롯데타워…신격호 70년 리더십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20.01.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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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별세]

(서울=뉴스1)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신 명예회장은 1949년 일본에서 제과업체인 롯데를 설립한 롯데그룹 창업주다. 이후 유통·물류·식음료·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으며 1966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롯데를 경영하다 2015년 노환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진은 롯데호텔 추진회의중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2020.1.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신 명예회장은 1949년 일본에서 제과업체인 롯데를 설립한 롯데그룹 창업주다. 이후 유통·물류·식음료·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으며 1966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롯데를 경영하다 2015년 노환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진은 롯데호텔 추진회의중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2020.1.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과 기업보국(企業報國, 기업으로 국가에 기여한다).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일제시대 맨손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껌사업에서 시작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를 재계 5위 굴지의 기업으로 일궈낸 재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특히 최고가 될 때까지 집중하고 한우물을 파는 뚝심과 실리의 경영자였다. 주변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사 하나쯤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자 그는 "무슨 소리,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고 일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 명예회장은 1949년 일본에서 제과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대통령의 요청도 있었지만 언젠가 고국 근대화에 일조하겠다는 '보국안민'의 소신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다른 1세대 창업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한일양국을 오가는 '현해탄 경영', '셔틀경영'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신 명예회장은 홀수달은 한국, 짝수달은 일본에 머물며 2017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날때까지 70여년을 현역으로 근무했다.

보국안민 정신으로 호텔, 관광, 유통업 개척
그의 보국안민 정신은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발현됐다. 롯데호텔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신 명예회장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호텔업 진출을 선언했다.



1973년 당시 변변한 국제 수준의 호텔도 없고,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마천루'라 불리는 롯데호텔의 문을 열었다. 여기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버금가는 1억 5000만달러가 투입됐다. 당시 일본의 대출금리가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활용해 일본 금융기관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일인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장을 축하하는 풍선 세레머니가 펼쳐지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일인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장을 축하하는 풍선 세레머니가 펼쳐지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1976년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건립에도 향후 국민소득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소비 욕구가 커지고 구매 패턴이 다양해질 것이라는 그의 선견지명이 담겼다. 신 명예회장은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달하는 규모로 쇼핑센터를 지었고, 우리나라 1등 백화점의 자리에 올라섰다.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 건설 역시 그의 관광보국 정신이 투영된 것이다. 관광산업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면 그에 걸맞는 시설이 있어야한다는 판단에 1984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 건설을 지시했지만 당시 임직원들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허허벌판이던 잠실벌에 대형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지으면 누가 찾겠느냐며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며 뚝심있게 밀어부쳤고 그 결과 롯데월드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그는 이어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물이 있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다"며 1987년 '제2 롯데월드' 구상을 발표했다. 수차례 무산과 재개를 반복하는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지상 123층, 높이 554.5m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하면서 그의 30년 숙원이 이뤄졌다.

일각선 황제경영 비판...자식 경영권 분쟁에 쓸쓸한 말년
그는 카리스마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빠르게 사세를 확장해왔지만 일부에서는 독선적 경영스타일과 함께 복잡하고 폐쇄적인 지배구조로 기업의 투명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말년에는 두아들 사이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고 본인도 재판에 넘겨지는 등 쓸쓸한 시기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이 9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게 경영권 분쟁의 원인이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불매운동으로 아사히, 유니클로 등 일본계 기업들과의 합작사를 다수 세운 롯데에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일 한국인 신분이던 신 명예회장은 한일 경제발전의 시차를 최대한 살려 일본에서 대중화된 호텔과 유통 산업의 성공 노하우를 한국에서 구현했다"며 "비록 경영권 분쟁으로 퇴색됐지만 그는 선견지명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오늘날 롯데를 일군 재계의 거목"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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