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의 리모델링 패키지 예시. /사진제공=한샘
하지만 한샘은 몇 년 전부터 다시 위기를 겪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주가도 고점 대비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전을 위한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인한 수혜주로 한샘이 거론되는데, 증권가에서는 조심스레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머니투데이 임종철 디자인기자
하지만 이케아는 가구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 크고 무겁고 비싼 제품이 아닌, 간편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값싼 제품들이 이케아 상품의 특징이었다. 이케아에 있어 가구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패션 아이템 같은 것이었다. 품질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파는 이케아 특유의 '가성비' 전략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온 이후 가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오히려 가구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까지 4조5000억~4조6000억 수준이던 국내 가구 소매판매액은 이케아 등장 이후 2015년 6조8332억원으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1월까지 7조4825억원을 기록했다.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자극하는 일종의 '메기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이케아 공포'라는 말은 '이케아 효과'라는 말로 바뀌었고 국내 가구 업체들도 유래없는 호황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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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임종철 디자인기자
한샘 역시 국내 다른 가구 업체와 마찬가지로 고가 위주 제품을 판매해 왔기 때문에 이케아 진출의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한샘의 매출은 오히려 이케아 진출 이후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케아 진출 소식이 들려오던 2013년 한샘 매출은 1조원이었는데 이케아 진출 이후인 2015년 매출은 이보다 70% 늘어난 1조710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467억원으로 2013년(798억원) 대비 2배 가량 증가했다.
한샘이 이케아가 차려 놓은 밥상에 단순히 숟가락만 얹은 것은 아니었다. 한샘도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는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샘은 이케아와는 다른 차별화한 전략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이케아가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만드는 것) 상품으로 가격을 확 낮추는 전략을 썼다면, 한샘은 가구를 직접 집으로 배송해 설치까지 하는 서비스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침대나 싱크대 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제품들은 소비자가 직접 설치하는 것이 어렵고, 전문기사가 설치하는 것이 품질면에서도 더 낫다는 사실을 노린 것이다.
소비자 타깃층도 차별화했다. 이케아의 제품들은 가성비와 실용성이 높아 주로 1인 가구에 인기가 많았는데, 한샘은 타깃층을 신혼부부나 자녀가 있는 가정 등으로 설정했다. 1인 가구보다는 맞벌이 등으로 소득에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고객층이었다. 소득 수준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가정이 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집안을 꾸미고 싶지만 인테리어에 대해 잘 모르는 고객들을 위해 한샘은 2014년 '스타일 패키지'를 출시했다. 단순히 가구 몇 개를 파는 게 아니라 거실, 침실, 자녀방 등 원하는 공간을 원하는 스타일로 꾸밀 수 있는 가구들을 패키지로 구성해 한꺼번에 판매하는 것이다.
매출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주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3년 초 1만8350원이던 주가는 그해 말 5만300원으로 2.7배 올랐고 2014년 말에는 그 2배인 11만4500원으로 뛰었다. 2015년에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상승 속도는 더 가팔라졌다. 그해 8월10일 주가는 33만7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부동산 침체에 실적 위기…주가는 제자리로
@머니투데이 임종철 디자인기자
한샘 매출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도 침체에 빠졌던 부동산 경기가 2013년 이후 크게 반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13년 전국 주택 매매거래는 85만건으로 전년 대비 15.8% 늘었고 그 다음해에는 18.8% 증가한 100만5000여건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전년 대비 18.8% 늘어난 119만여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주택 매매는 2016년부터 꺾였다.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과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원인이었다. 한샘의 실적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2017년 영업이익 1405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하더니 그 다음해에는 560억원으로 60%가 줄어드는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1조2638억원, 영업이익은 341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2.2%, 6.3% 줄어들며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주가는 7만5700원. 2015년 고점 대비 4분의 1로 떨어진 가격이다.
리모델링으로 돌파구 마련
한샘 조이S 자녀방 / 사진제공=ㅁ
집안 내부 공간별, 스타일별 패키지 상품 개수를 대폭 늘렸고 영업망 확대를 위해 2018년부터 제휴점들을 리하우스 대리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18년 말 80여곳이었던 리하우스 대리점은 지난해 말 450개로 크게 늘었다.
공격적인 영업의 결과는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2018년 3분기 월평균 170세트씩 팔렸던 리모델링 패키지는 지난해 4분기 월평균 1000여세트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실적 감소세는 이어지겠지만 주택 매매의 소폭 회복과 패키지 판매 증가로 실적 감소폭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규제…한샘에 반사이익?증권가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인한 반사 이익이다. 고가 주택의 보유세를 높이고 대출을 규제하는 정책으로 주택 매물을 늘려 가격을 떨어트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의도대로 주택 매물이 늘어나면 한샘 실적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
리모델링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재건축 규제와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한샘의 주력 사업인 리모델링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28조원 규모였던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은 올해 38조원, 내년에는 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감을 반영하듯 올해 한샘의 주가는 연초 대비 20% 이상 올랐다. 증권사들의 목표주가 상향도 이어지고 있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주택 분양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리모델링 시장 활성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작용한다"며 "올해는 리하우스 대리점의 수익성 향상 등으로 실적 회복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한켠에서는 근본적으로 주택 매매거래에 연동할 수밖에 없는 한샘의 매출 구조에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용 가구 위주로 판매하는 이케아는 매년 매출이 늘고 있지만 한샘의 매출은 가구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뒷걸음질 한 것이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불황이 깊어질 수록 가성비를 찾는 소비자들은 늘어난다"며 "고가의 패키지 상품 판매도 좋지만 불황을 이길 수 있는 매출 다변화 전략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