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돈(소금, 금, 동물 가죽 등)은 “서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현대의 화폐는 “신뢰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짜 돈이라도 ‘통용’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물가와 연봉이 전혀 없는 것과 물가와 연봉이 5% 오르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할까.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한다. 연봉이 오르는 걸 선호하는 성향 때문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가치보다 명목가치에 따라 사고하는 경향을 ‘화폐 착각’이라고 부른다.
인플레이션은 나쁘지만, 디플레이션은 더 나쁘다.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수입이 떨어지고 집은 물론 다른 자산 가치까지 줄어든다. 반면 은행에는 매달 같은 액수의 돈을 갚아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을 때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구조 개혁 과정을 부드럽게 해 주는 윤활유가 된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물가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3% 임금 삭감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인플레이션이 4%일 때 임금 인상을 1%만 하면 받아들인다.(둘 다 실질적으로 3% 임금 삭감이다) 노동 시장은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있을 때 더 융통성이 생기는 셈이다.
저자는 “정부가 자유자재로 돈을 더 찍어낼 수 있는 ‘명목화폐’ 사용 이래로 문제는 늘 인플레이션이었고 그것과의 싸움은 고통을 가져온다”며 “그럼에도 명목화폐를 쓰는 현재의 시스템이 번영과 안정, 경제에 도움이 됐다”고 강조한다.
◇돈의 정석=찰스 윌런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552쪽/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