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첫날, 만나본 현장의 노동자들 "아직은…"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정경훈 기자, 이소은 기자 2020.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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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0년차 퀵서비스 기사 고모씨(55)는 2016년 운전 도중 자동차와 부딪혀 오른쪽 갈비뼈를 심하게 다쳤다. 이후에도 허리와 어깨가 아파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게 일상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기 어려웠다. 30명 규모 회사에 다니지만 퀵서비스 기사인 고씨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인 탓이다.

고씨는 머니투데이와 만나 "퀵서비스 기사도 '김용균법'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회사에서도 따로 안내가 없었다"며 "그동안 비용 부담도 많고 집에 있는 가족도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법'이 16일부터 시행됐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씨가 사망한 지 약 1년1개월 만이다.

죽음의 외주화 막기 위한 김용균법…노동자들은 "처음 들어요"
김용균법에는 퀵서비스 기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노동자) 9개 직종과 배달 노동자까지 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재해 위기에 놓인 노동자를 더 많이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사업주가 특고노동자에 대한 산재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법의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0년차 퀵서비스 기사 임모씨(61)도 마찬가지였다.

임씨는 "무거운 옷을 많이 실은 채 운전하고, 높은 곳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사고나 위험할 때가 많다"며 "아직 들은 내용은 없지만 오늘부터 우리도 보호 대상에 속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고 했다.

2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한 권모씨(64)는 "김용균법에 대해 들어봤지만 아직 회사에서 특별한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용균법 시행됐지만 사각지대는 여전
현장의 노동자들이 실제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면서 법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본격적인 김용균법 시행을 앞두고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산업안전의무 조치에서 제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체가 직접 안전보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김용균법 규정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배달업을 처음 시작하는 노동자에게도 '헬멧 꽉 조여라' '장비 잘 착용하라'는 말 정도뿐"이라며 "제대로 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택배기사나 퀵서비스 노동자가 무거운 짐을 옮길 때 도움이 되는 설비를 도입하는 등 안전보장 문제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점점 키워가야 한다"며 "대신 정부가 영세한 사업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고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김용균법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어떤 형태의 노동자로 인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균법 시행 첫날…산업계도 안전관리 '분주'
김용균법 시행으로 일부 산업현장에선 현장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움직임도 보였다. 산업 구조상 하청근로자가 많은 건설현장이 대표적이다. 김용균법 적용의 대표적 현장인 만큼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하거나 안전체험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11월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안전관리 체제를 한층 강화했다. 기존 사장 직속 조직인 품질안전실에 더해 사업본부장 산하의 품질안전팀을 신설했다. 품질안전실이 각 현장을 세밀하게 챙기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업본부마다 품질안전팀을 별도로 둬 이중으로 챙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GS건설도 최고안전책임자(CSO)를 기존 부사장급에서 사장급으로 격상했다. CSO와 최고경영자(CEO)는 각각 월 1회 전사 Q·HSE (품질 안전 환경) 운영 위원회를 주관해 안전보건 관련 주요 이슈를 논의하고 작성된 회의록을 전체 안전보건·시공직군에 전달해야 한다. 건설현장 사망사고 절반 이상이 추락 재해인 만큼 이에 대한 예방조치도 강화한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경기도 용인에 안전체험학교를 설립하고 전직원 및 협력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CPR(심폐소생술) 실습, 비상대피, 개구부 추락 상황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교육 후에는 간담회를 통해 현장 안전활동 실천을 위한 협력업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포스코건설은 한성의 사장을 비롯해 각 본부별 본부장이 13일 대전 중이온 가속기 현장점검을 시작으로 전 현장에 안전관리종합개선대책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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