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이 다른 '다보스'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0.01.1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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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4일 스위스 작은 마을에 정·재계 인사 3000명 몰려

전세계 유명 정치인·기업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 포럼이 다음주에 개최된다. 올해 50회를 맞는 다보스포럼에서는 기후 및 환경문제를 다룰 예정이지만, 개인전용기와 고급차를 이용하는 참석자들이 많아 이번에도 '부자들의 공허한 말잔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알프스 작은 마을에 전 세계 인사 3000여명 참석
2017년 다보스 포럼이 열리는 다보스 마을의 모습/AFP2017년 다보스 포럼이 열리는 다보스 마을의 모습/AFP


14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오는 21~24일에 개최되는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화합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이다. 구체적으로는 △기후 및 환경문제 △지속가능하고 포괄적인 산업구조 △4차 산업혁명 동력을 이끄는 기술 △고령화와 사회·기술적 추세에 따른 교육·고용·경영 문제 등을 다룬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는 국가 정상 53명을 비롯해 전 세계 정치·경제·학계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년만에 참석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산나 마린 핀란드 신임 총리 등도 참여한다. 우리나라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연속 불참한다. 우리나라 정부 인사 중에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유명희 통섭교섭본부장이 참석한다.

유명인사 중에서는 그레타 툰베리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외에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의장, 장융 알리바바 회장 등 기업가들이 참석한다. 국내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이 자리할 예정이다.



문제는 포럼이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있는 작은 휴양 마을인 다보스에서 개최된다는 점이다. 다보스는 해발고도 1575m에 위치한 관광지다. 여름철엔 피서지, 겨울철엔 스키 휴양지로 유럽 왕실과 부유층이 주로 찾는다. 다보스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산속 휴양지에서 지식인들이 심신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다보스 인근 공항에 전용기 309번 떴다
지난해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변화를 위한 학교 파업' 피켓을 들고 기후 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AFP지난해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변화를 위한 학교 파업' 피켓을 들고 기후 변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AFP
각국에서 출발한 참석자들이 다보스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고위 인사들이 집결하다보니 전용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WEF는 지난해 다보스포럼 인근 공항 2곳에서 전용기가 309번 이착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행기는 이산화탄소 뿐 아니라 오존을 생성하는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를 분출한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의 약 5%가 상업적 비행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때문에 '비행은 수치(flight shaming)'라는 운동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에 거주하는 툰베리는 지난해 미국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배제하고 열차와 배로 이동해 눈길을 끈 바 있다. 툰베리는 지난해 다보스 포럼도 기차를 이용해 참석했다.

WEF는 2017년부터 탄소 배출권을 구매해 다보스 포럼 때문에 발생하는 비행기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마을에 셔틀로 운행되는 차량은 88%가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차다. WEF도 생태 위협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포럼이 자원을 소비하고 탄소 배출을 유발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WEF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지속 가능"한 회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다보스에 전용기를 운행하는 스위스 항공사 루나제트 또한 비행에 따른 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루나제트의 에머릭 세가드 CEO는 '비행은 수치' 운동에 대응해 고객들에게 더 작고 연료 효율적인 비행기를 선택하도록 권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다보스는 니치마켓일 뿐"이라며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 및 인도에서 온다면 열차를 탈 수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발생한 탄소는 되돌릴 수 없어"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AFP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AFP
그러나 환경 운동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발생한 탄소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3000여명의 전세계 인사 외에도 수행원, 보안 요원, 회의를 진행시키기 위한 직원 등까지 포함하면 너무나 많은 인원이 다보스로 이동한다는 지적이다. 유럽 비영리단체인 교통&환경의 항공·해운 전문가인 루시 길리엄은 "(탄소배출권이) 비행기에서 발생한 배출량을 실제로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행기는 연료를 태웠고, 탄소는 대기 중으로 방출됐다"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숙박 비용이 치솟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숙소가 충분치 않아 교회 건물까지 임시 숙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슈밥 회장은 회의 개최 장소를 변경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다보스포럼은 단 한차례를 제외하면 다보스 밖에서 개최된 적이 없다. 2002년에는 9.11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개최됐다.

슈밥 회장은 지난해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개최지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다보스 당국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소 2800개의 호텔 객실이 필요하며 우리 직원들의 숙소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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