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당뇨 전용보험'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20.01.1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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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당뇨 전용보험'


지난해 초만 해도 “당뇨 환자들을 모시겠다”며 앞다퉈 쏟아지던 ‘당뇨 전용보험’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보험회사의 면책기간(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하는 기간)이 끝나 가입자들의 보험금 청구가 급증하자 보험사들이 슬그머니 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부활했다 또 사라진 당뇨보험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지난해 10월 전후로 출시한 지 얼마 안 된 당뇨 전용보험의 판매를 중단했다. 상품을 판매 중인 일부 손보사와 생명보험사도 상품 개정이나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당뇨 전용보험은 2005년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시작으로 첫 등장해 틈새 상품으로 간간히 출시되다 2012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당뇨는 한번 발병하면 완치가 쉽지 않은 질병인 데다 합병증도 잘 생겨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 관리가 어려워서다.

이때 만해도 보험사들은 질병 발병 가능성이 높은 유병자에게 건강보험을 판매할 때 보유 중인 질병은 보장하지 않는 조건이거나 보장 범위가 암이나 사망 등으로 극히 제한된 상품만 팔았다.



이후 금융당국이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 혜택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유병자 전용보험의 보장 범위를 모든 질병으로 확대하자 2017년 당뇨 전용보험도 다시 부활했다. 시장 포화로 영업 경쟁이 과열되면서 라인업을 확대하려는 취지도 있었다. 하지만 상품 출시를 재개한 지 불과 1~2년 만에 또다시 대거 판매 중단 사태를 맞은 것이다.

보험금 지급 늘자 판매중단…'초간편보험'으로 갈아타기

당뇨 전용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들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꼽는다. 생각보다 잘 안 팔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책기간(1년)이 끝나자마자 상품 판매를 그만 둔 것은 보험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손해율 감당이 안 된 것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뇨 전용보험의 경우 역선택으로 인한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우려가 높았다. 당뇨라는 사실을 숨기고 가입한 후 면책기간이 끝나자마자 진단보험금을 청구할 시 정확한 발병 시기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의 경우 면책기간이 끝나자마자 보험금 청구가 예상보다 가팔랐던 것으로 안다”며 “비슷한 시기에 기존 간편심사 건강보험의 알릴의무 사항을 3개에서 2개 혹은 1개로 줄인 초간편심사보험(이하 초간편보험)이 출시되면서 당뇨 전용보험의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뇨 전용보험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들도 당뇨 특약은 계속 판다.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초간편보험 등에 당뇨 특약을 부가하는 형식으로 팔면 보험금 지급은 낮추고 영업은 활성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초간편보험도 당뇨 전용보험처럼 고위험상품이라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가입 문턱을 더 낮춘 대신 보험료를 올렸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보험사는 요율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거나 누락한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판매가 중지됐지만 향후 손해율이 높아지고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면 결국 선의의 가입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도 있다”며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의 영업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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