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미·중 무역협상 타결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1.1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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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산업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8개월에 걸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한 고비를 넘기며, 1차 무역협상이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국 측 고위급 무역 협상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하면서다.



이번 1차 무역협상 타결로 마주 보고 달리던 폭주기관차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일단 피하게 됐다. 글로벌 빅2의 합의로 세계 무역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타결 소식을 반기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여러 국가들은 이번 타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미중 무역협상 타결이 우리에게도 반가운 일일까.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측면에서는 다행이지만, 그동안 다른 국가들의 사업아이템을 잠식해왔던 중국의 공격적 투자가 재개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분야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양국 합의 내용 중에 중국 당국의 국영기업 등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는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중국이 자국 산업을 키우기 위한 대규모 자금 지원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재시동은 남아 있고, 그 시기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제조 2025'에서 반도체 국산화를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 달성하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50개의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에 총투자비는 2430억 달러(약 282조원)를 투입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의 국산화율은 2018년 12.9%에서 2019년 15.5%로 상승하는데 그쳤다. 2015년 발표했던 반도체굴기의 목표인 올해 국산화율 40%는 요원한 상태다.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는 중국이 막 출발선에서 뛰려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제대로 발목을 걸었기 때문이다. 2018년 중반 미중 무역 분쟁이 발발한 이후 미국의 즉각적인 조치 중 하나가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의 자국 및 우방의 사용제한 조치와 함께 첨단 기술의 핵심 장비에 대해 사실상 중국 금수조치였다.

반도체의 첨단기술 핵심장비인 EUV(극자외선)의 공급중단은 치명타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이 지난해 11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중신궈지)에 노광장비 공급을 보류한 것이다.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는 EUV 장비 1대 가격이 2000억~3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장비를 1개 라인에 수십대를 깔아야 한다. 대규모 공급을 요구하는 중국에 이를 공급하지 않은 이유는 우방인 네덜란드와 미국의 관계 때문이다.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이 장비를 도입해 앞서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중국의 2차 무역협정이 타결되면 중국의 공세는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릴만큼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중국도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과거 중국이 디스플레이의 핵심이었던 LCD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03년에 하이닉스의 LCD 부문이었던 하이디스를 인수한 중국 BOE(경동방)은당시 장비업체들에게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와 똑같은 장비를 2~3배 가격을 줄테니, 똑같이 라인을 구축해달라고 요구했다.

2005년경 라인을 가동한 BOE는 약 10년만인 2017년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디스플레이 왕국 코리아가 중국의 LCD 굴기 한방에 1위 왕좌를 내준 것이다.

반도체에도 이런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나마 미국의 브레이크가 우리 반도체의 위기를 조금 늦췄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국내에서 서로 싸우지들 말고, 글로벌 전쟁에 눈을 돌릴 때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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