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정형화 부담 탈피엔 박수…용두사미 '결말'은 한계"

머니투데이 이지용 건국대 학술연구교수 2020.01.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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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이지용 건국대 학술연구교수 심사평

"SF의 정형화 부담 탈피엔 박수…용두사미 '결말'은 한계"


SF(Science Fiction)를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는 장르가 형성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논의돼 오는 부분이다. 특히 ‘Science’를 구성하는 개념들은 계속해서 변화해왔고, 개념들이 명멸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면서 SF가 생각보다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는 장르가 되어왔다. 그러기 때문에 SF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주제들은 실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Fiction’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시기에 일정한 형태로 독자들을 만난다면 조금 더 많은 가능성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으나 공모전이라는 형태로, 그것도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시스템 내에서라면 조금 더 엄정한 의미맥락들이 작용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는 출품작들의 면면에서 다양한 소재의 접근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인상적인 능력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SF의 고질적인 스테레오 타입이자 가장 큰 오해의 촉발 지점인 과학기술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작품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Science’에 대한 부분들의 이해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SF가 장르이자 문화예술의 한 형식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고, 융복합과 경계 사이의 횡단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더 부각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사과정에서 공통적인 화두 중 하나였던 ‘결말’에 대한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들이 ‘Fiction’이라는 형식의 구현에 결국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다양한 소재와 설정,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스토리텔링으로 모양을 잡지 못하고 파편화된 상태로 부유하는 모습들이 많았다. 소재를 차용하고 세계관을 설정한 작가조차도 그것을 충분히 신뢰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SF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경이의 세계를 만들어 독자들이 몰입하게 하려면 작가가 먼저 설정한 세계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부재한 상태에서 소재와 설정을 그저 나열하게 되면 스토리텔링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지만, 결국 독자가 작가가 설정한 경이의 세계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그러기 때문에 결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결말에서의 파급력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설정한 경이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세계 안으로 독자들을 불러들여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장편과 중단편에서 대상을 받은 '천 개의 파랑'과 '모멘트 아케이드'는 경이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의 끝까지 도달하는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천 개의 파랑'과 같은 경우엔 소재들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다양한 변주를 통해 문제화하면서 작품 내에서 계속해서 의미들을 확산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일견 부족해 보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문제 역시, SF가 단순히 미래기술을 전시하고 예언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인해 변화된 세계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사고실험에 있다고 보았을 때 훌륭한 작품이었다.

또 대상과 세계를 향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자아내는 재주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이후에 작가의 시선이 닿을 부분들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개성적이고, 진지했다.

본심에 올라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던 '많은 사람의 죄'는 전문적인 정보에 대한 치밀한 배치와 그것을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전개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다만, 이 작품에서도 참신한 설정들과 부분적으로는 성공한 이야기의 구현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닿지 못했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동일하게 본심에 올랐던 '브레이넷(종의 기원)' 역시 설정에서의 의미들이 전체 이야기 맥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여줬다.

설정과 소재들에 대한 밀도 있는 구현을 요구하는 중단편의 경우는 구성에 대한 의미들이 장편에 비해 더 부각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단편 예심에서 개성적인 설정을 텍스트로 옮겨놓고 그것이 이야기로 엮어지는 부분들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한 글들이 많았다. 마치 드라마의 시퀀스 한 부분을 텍스트로 옮겨놓거나, 게임 플레이의 리뷰를 보는 것과 같은 작품들이 많았다.

반면 중단편적인 구성의 묘를 견지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는 소재와 세계관에 대한 설정이 SF로 보기에는 다소 어색한 작품들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들 가운데서 '모멘트 아케이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성의 힘을 잃지 않고 설정한 세계관을 밀고 나가는 힘이 돋보였다. 소재와 세계관에 대한 설정들은 오히려 참신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작품이었고 제출된 조판의 파격 등이 의구심을 들게 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읽어 내려가면서 결론에서 제시된 의미들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좋은 작품이었다.

우수작인 '테세우스의 배'는 설정한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제는 SF에서 클리셰라고도 볼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 그 가능성이 아직 더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복제인간에 대한 접근은 포스트휴먼 담론의 전개가 본격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의미맥락을 갱신해 주어야 하는 소재였기도 했는데, 그러한 부분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작 수상작인 '네 영혼의 새장', '트리퍼', '그 이름, 찬란'과 같은 경우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에서 공통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경이의 세계를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지점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네 영혼의 새장'은 소재의 재의미화가 돋보였고, '트리퍼'는 처음부터 내달리는 서사의 경쾌함이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는,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 이름. 찬란'은 흥미로운 소재 간의 결합이 뻔해 보일 수 있는 세계관을 절묘하게 비트는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다.

아쉽게 최종 당선작에 오르지 못했지만, '산호의 달밤'과 '굿바이 테라리움'과 같은 작품들은 2020년에 접어든 현대 한국에서 미래를 그린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에 있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비록 특이할 만한 변주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오버테크놀로지와 사회적인 문제의 일정 부분에 고착화되어 있는 SF 서사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위기, 이로 인해 촉발된 인류세(Anthropocene)의 시대에 상상하게 될 미래에 어떠한 의미들을 제시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해당 소재들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과 그것을 충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야기 내에서 변주하는 부분을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좋은 작품들이 쏟아진 덕분에 심사과정에서 SF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부분들부터, 작품 내에서 구현된 의미들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의 영역까지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야 했다. 의미 있는 경험을 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하고, 선정되신 작가들의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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