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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가작들로 선정 어려워…SF 가장한 음모론은 아쉬워"

머니투데이 김보영 SF작가 2020.01.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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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 김보영 SF작가 심사평

"훌륭한 가작들로 선정 어려워…SF 가장한 음모론은 아쉬워"




<총평>

2019년은 한국 SF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다양한 경로로 훌륭한 작가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자인 김초엽 작가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SF 무크지가 생겨났고, 한국 SF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여러 매체가 2019년의 문학 키워드로 SF의 약진을 손꼽았다. 한국 SF의 원년은 종종 있었고 주기적으로 있었지만, 한 번쯤 그 회귀소설 같은 수사를 너그럽게 수용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장 전체가 풍성해졌다.

단지 데뷔 방법이 다양해진 만큼 한 공모전에 좋은 작품이 몰리는 일은 줄어드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본심작을 보면 기우였던 듯하다. 대상과 우수상에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가작에서 격론이 있었는데, 그만큼 엇비슷하게 좋은 작품이 많이 투고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력 이상으로 작품의 독창성과 개성이 점점 더 요구되리라 본다. 기본기는 있어도 결말에서 힘이 떨어진 작품이 유독 많았는데, 글은 시작보다 결말이 중요하니 끝까지 기력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일반문학에 가까운 작품이 많이 눈에 띄었다. 다른 글쓰기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SF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려니 한다. 하지만 여기가 SF 공모전이라는 것은 규칙이자 전제조건이니만큼, SF 요소를 차용하지 않은 글을 본심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청년 빈곤과 드높은 부동산 가격 문제를 다룬 작품이 예심에 다수 있었는데, 시대의 반영이려니 한다.

스페이스 오페라라 부를 만한 우주 활극이 이전보다 많이 보였다. 소재와 상상의 확장을 의미하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단지 이들 중 대다수 기반이 문학이 아니라 영상매체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별다른 묘사 없이 아이디어의 나열만이 이어지는 작품이 많았다. 국내에는 이미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이 적지 않게 들어와 있으니, 이를 참고하여 기법을 연구해보았으면 한다.

더해서 이것은 소설공모전이다. 소설은 가상의 이야기지 논픽션이나 연설문이 아니다. 작가가 종교적 신비주의나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쓴 글을 SF인 척 내밀어 보았자 그 의도는 뻔히 보이기 마련이다. 부디 그 내용을 믿지 않게 된 뒤에 다시 쓰기 바란다.

소중한 작품을 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격려와 건필을 기원한다. 좋은 문학상을 계속 운영하고 계신 머니투데이에도 감사를 드린다. SF의 약진의 한 축에 또한 훌륭한 신인들을 배출한 이 한국과학문학상이 있으려니 한다.

<심사평>

내가 본 예심작 중에서 본심에 올릴지 마지막까지 고민한 작품은 '엄마는 외계인'과 '우주가 멈춘다!'였다. 둘 다 기본기를 갖춘 소설이었다. '엄마는 외계인' 은 짧은 소품이지만 재미가 있었고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외계인보다 귀신이 주된 소재였고, 외계인은 억지로 넣은 느낌이 컸다. SF라는 제약이 없다면 출간이 가능한 소설로 보이니 다른 경로를 알아보았으면 한다.

'우주가 멈춘다!'는 내가 예심에서 본 스페이스 오페라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호감이 있었지만, 명사만 바꾸면 현대 한국의 어느 회사에서 일어나는 파업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한 소설이었다. 문제의 시작과 문제의 해결 어디에도 우주라는 배경이 활용되지 않았다. 무대를 우주로 잡았다면 적어도 지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사건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 기억에 남은 작품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꿈틀날틀'은 잘 쓴 소설이었지만 역사소설에 가까웠다. '산호의 달밤'은 과학보고서에 가까웠고, 그 과학보고서라는 면에서도 적합성이나 새로움을 찾기 어려웠다. '회귀'는 다중우주를 관리하는 모습이 공무원 업무처럼 축소된 풍경이 매력적이었지만 그 설정을 개인과 그 가족의 운명과 잘 연결했는지 의문이 있었다.

'굿바이 테라리움'은 흥미로운 서두를 보여주었으나 주인공의 과거를 7일간 되짚는 전개에서 달리 새로운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벌들의 천국'은 청년빈곤과 주거문제를 다룬 소설로, 벌집과 같은 아파트의 묘사가 재미있었다. 단지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긴장을 주는 동시에 산만함도 주었고, 전달하려는 메시지 또한 모호했다.

'세이건 행 후발대'는 멸망한 지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서두를 더 다듬었다면 좋았을 것이고 결말이 미비한 편이었다. 주인공이 자연생식을 동경하는 지점은 현대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본다.

'흰 당나귀의 마지막 사막'은 과다교육과 신분상승 욕구에 대한 풍자가 도드라진 점이 장점이었으나, 소설이 표면적으로 제시하는 주제와 태아를 VR(가상현실)로 만나는 엄마의 황홀경에 초점을 맞춘 전개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다음은 중단편 부문 선정작에 대한 심사평이다.

'트리퍼'는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었다. 나는 본심작 중 '세계의 끝에서 돌이 된다면'과 장단점이 비슷한 작품으로 보았다. 독창적인 소재와 압축적인 전개, 그리고 풍성한 묘사로 독자를 끌어당겼지만 결말에서 힘이 부족했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 중 어느 쪽이든 지지할 수 있었지만 좀 더 상상의 여지와 즐거움을 주었던 '트리퍼'에 점수를 주었다.

'그 이름, 찬란'은 우주선에 사는 사람들이 지구 강하 가상시뮬레이션을 하며 연극에 탐닉하는 풍경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작은 이야기로 큰 세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며, 사람들의 운명과 연극이 꿈처럼 교차하는 결말이 장엄했다.

'네 영혼의 새장' 입양아에게 원래 그 가정에 있었던 아동의 성향을 입력하는 세계를 그린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SF적인 장치를 통해 그 의미와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단지 결말의 미비함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테세우스의 배'는 힘찬 글이며 시작부터 독자의 마음을 홀려놓았다. 전송 오류로 폐기될 운명에 처한 사람이 정전으로 하루의 유예를 얻고, 이후 연속적인 사건에 휘말리며 점점 거대한 운명으로 빠져든다. 양자전송이 전송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물을 폐기하고 합성하는 것인가에 대한 상상은 SF 내에서는 종종 있었던 소재지만, 그 아이디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정적이고 우울한 글이 쏟아지는 가운데 속이 확 트이는 소설이었다.

단지 사건이 계속 확장되며 결말에서 단편으로서는 불필요한 인물과 사건이 계속 등장하는 점이 단점이었다. 그래도 대상으로도 고려되었을 만큼 좋은 작품이었고, 대상과 우수상에는 심사위원 사이에서 이견이 거의 없었다.

'모멘트 아케이드'는 소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감동’을 심사위원에게 선사한 작품이다. 사람의 기억이 쇼핑몰처럼 거래되는 세계에서, 고통에 빠져 있던 주인공은 연인과의 기억을 올린 한 인기 없는 모멘트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독자의 예상을 조금씩 뛰어넘는 전개가 펼쳐지며, 중단편 본심작 중 가장 훌륭한 완결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열어주며 나누어주는 것으로 남을 위로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자를 감싸 안고 도닥여주는 듯한 소설이었다. 심사위원들의 큰 지지를 받아 대상으로 선정됐다.

다음은 장편부문 심사평이다.

본심에 올라온 '브레이넷(종의 기원)'과 '많은 사람의 죄'는 유사한 단점을 갖고 있었다. 설정과 아이디어가 끝없이 펼쳐지기만 할 뿐 소설로서의 구조를 만들고 이야기의 맥락을 전달하는 데에 많이 실패한 작품이었다. 물론 SF적인 아이디어는 SF 공모전에서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그 이전에 당연히 소설의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천개의 파랑'은 SF적인 장치를 그리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이 점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작품이었다. 안락사를 앞에 둔 경주마와 결함이 있어 살짝 인간처럼 사고하게 되어버린 로봇 기수를 중심으로, 이 둘을 둘러싼 여러 사람의 삶이 무지갯빛으로 펼쳐진다. 수명이 다한 경주마의 단 며칠의 삶의 유예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 가장 천천히 달리기 위한 여정, 더해서 결말의 소소한 반전은 감동과 전율을 자아낸다.


제목 그대로 천 개의 파랑이 가득한 듯한 환상적이고 우아한 소설이다. 다소 과장 섞인 찬사를 보내자면 문목하와 정세랑을 합친 만큼 좋았다. 별다른 이견 없이 지지를 받아 대상으로 선정됐다.

당선된 모든 분께 축하를 드리며,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작가들의 건필 또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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