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스타트업 생태계에 독 풀었다"…손정의의 민낯?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유희석 기자, 강민수 기자, 김수현 기자, 정인지 기자, 김태현 기자, 서진욱 기자, 강기준 기자 2020.01.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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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귀재 손정의, 실패 보고서(종합)

편집자주 마이더스 손으로 불리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2019년은 참담한 한해였다. 우버, 위워크 등 그가 점찍은 기업들마다 가치가 고꾸라지면서다. 소프트뱅크의 3분기 실적은 1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을 정도다. 비전이 있으면 돈은 따라온다는 손정의의 자신감은 2020년에 여전히 유효할까.

손정의의 "더 크게", 투자업체에 독 됐나?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투자실패 사례가 최근 이어진 가운데, 그의 투자방식이 스타트업에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손 회장의 전략은 무조건 '더 크게' 아니면 집에 가라는 식"이라고 전했다. 손 회장이 느리지만 안정적인 성장보다 공격적인 사업 확대를 요구하고, 이렇게 기업가치를 부풀려 이익 내는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투자를 받은 많은 기업들이 비전펀드의 요구대로 공격적으로 확장했다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기도 했다.



미국 부동산업체 콤파스는 2017년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달러를 지원받은 후 1년 만에 체인 수를 4배나 늘렸다. 그러나 정작 이를 통합·관리할 시스템이 없어 이익은 줄고 폐업, 해고가 잇따랐다. 시카고의 한 부동산은 콤파스와 계약하기 전보다 연수익이 20분의 1로 감소했다. 인도 호텔체인 '오요'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치솟는 공실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지럽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소프트뱅크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독을 풀었다"면서 "창업자들이 위기를 견딜 수 있는 사업을 더 이상 구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빌 아우렛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경영대 교수도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법을 깨닫기 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 받고 있다"면서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비전펀드의 최근 실패 사례로 꼽히는 위워크와 우버 투자는 '무리'였다는 시각도 있다.

호주 비영리매체 더컨버세이션은 이에 대해 "엄청난 도박"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이 각 산업에서 승자가 돼 독식할 수 있다는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매체는 "각 기업들이 앱 설계와 기술을 통해 각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 속 결정한 투자"라면서 "그러나 이들의 주요 전략은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위워크의 사업모델은 건물을 저렴한 가격에 장기간 임대한 뒤 공간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이보다 비싸게 임대료를 받아 차익을 내는 것인데, 불황일 때는 수요가 줄어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없게 된다고 매체는 지적한다. 우버처럼 사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경쟁자들이 금방 진입해 이익이 줄기도 한다.

정한결 기자

'악몽의 2019' 투자귀재 손정의 올해는 웃을까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실적발표회에서 발언 도중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AFP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실적발표회에서 발언 도중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AFP
2019년회계연도 2분기(7~9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7001억엔(약 7조418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손정의 회장이 1981년 9월 회사를 세운 이후 최악의 실적이었다.

지난해 11월6일 실적 발표를 위해 도쿄에서 기자간담회 무대에 오른 손 회장도 "마치 태풍이 분 것 같다. 너덜너덜해졌다"며 부진한 성적을 반성했다. 하지만 당시 손 회장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그는 "위축되지 않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투자부문 빼면 안정적 이익

소프트뱅크그룹은 투자 부문을 제외하면 여전히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주요 사업은 이동통신과 인터넷 서비스로 이익을 매우 안정적으로 창출한다. 손 회장 자신감의 원천이다.

주요 계열사는 일본과 미국의 이동통신회사 소프트뱅크와 스프린트가 있다. 소프트뱅크그룹 지주회사가 최대주주인 Z홀딩스는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를 지배한다. 야후는 곧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과 합병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모바일 기기 유통회사 브라이트스타와 세계 최고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도 소프트뱅크그룹 산하다.

소프트뱅크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 지분도 30% 가까이 보유한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그룹 시가총액이 5820억달러(약 675조원)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분 가치가 적어도 190조원에 달한다. 7조원 정도의 손실은 우스운 것이다.

막대한 부채는 뇌관

연단에 붙어 있는 소프트뱅크그룹 로고. /사진=AFP연단에 붙어 있는 소프트뱅크그룹 로고. /사진=AFP
소프트뱅크그룹은 비전펀드와 델타펀드를 빼면 예년과 비슷한 실적을 기록했다.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조3153억엔(약 24조5400억원), 2659억엔(2조8182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 최대 자동차회사 현대자동차 매출과 비슷하고, 영업이익은 7배나 많다. 다만 비전펀드와 델타펀드의 영업손실이 9702억엔(약 10조2830억원)이나 되면서 그룹 전체 실적을 끌어내렸다.

물론 소프트뱅크그룹이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대로 투자 실패가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그룹이 해체될 가능성도 있다. 가장 큰 위험요소는 '부채'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소프트뱅크그룹 총부채는 28조2250억엔에 이른다. 지난해 3월 말보다 1조1378억엔 늘었다. 지금처럼 차입을 통해 투자를 계속 확대하는 전략을 고수하다가는 화근이 될 수 있다.

유희석 기자

우버·위워크…'투자귀재' 손정의 체면구기다
우버·위워크에 이어 줄지어 기업가치 하락·파산보호 신청까지

손정의 비전펀드 투자실적.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손정의 비전펀드 투자실적.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투자의 귀재'로 불렸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에게 지난해는 특히 시린 한 해였다. 소프트뱅크가 이끄는 비전펀드의 주요 투자처가 실패하거나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대규모 적자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3분기(7~9월) 실적발표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최종수익이 7001억엔(약 7조4200억원) 적자를 기록, 1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비전펀드에서 9702억엔(10조2800억원)의 적자를 본 탓이다. 물론 휴대전화와 통신업 등에서의 성적은 양호해 비전펀드의 손실을 일부 보전하긴 했다.

나쁜 투자 성적에 큰 영향을 준 것은 하반기 기대주로 꼽혔던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의 기업공개(IPO) 무산이다. 지난해 초반 사모 시장에서 470억달러로 평가된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수익성 등에 대한 회의감이 일며 80억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비전펀드가 위워크에 투자한 돈은 최소 225억달러(26조원)이다.

지난해 5월 상장한 차량공유업체 우버 역시 마찬가지다. 우버는 5월 이후 주가가 급락해 현재는 공모가(45달러)보다 30%가량 빠진 상태다. 지난해 3분기 순손실 또한 11억6000만달러(1조3500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9억86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을 키웠다. 소프트뱅크는 우버에 95억달러를 투자했다.

손 회장의 투자 실패 사례는 이어졌다. 소프트뱅크는 지난달 9일 미국의 애견 산책 대행 스타트업(초기벤처회사) '왜그 랩스(Wag Labs)' 보유 지분 50%를 회사에 매각했다. 비전펀드는 2018년 1월 왜그에 3억달러(약 3575억원)를 출자해 지분과 이사회 의석 두 개를 확보했으나, 불과 1년11개월 만에 지분을 다시 창업자에 넘기며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왜그 투자에서 발을 빼는 이유는 출자 이후 사업이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2015년 창업한 왜그는 시장 점유율이 2017년 1분기 11%에서 지난해 1분기 23%로 수직 상승했으나, 비전펀드의 투자 이후 오히려 경쟁업체에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줄었고, 기업가치는 비전펀드 출자액(3억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소프트뱅크가 대규모로 투자한 중국 핀테크 업체마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중국 핑안보험 산하 핀테크 기업인 원커넥트금융기술의 기업가치가 상장을 앞두고 당초 예상치의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 2018년 비전펀드로부터 6억5000만달러(약 7500억원)를 투자받을 당시 원커넥트는 75억달러의 가치로 평가받았으나 현재(26일 종가기준) 기업가치는 34억4100만달러 수준이다.

손 회장은 자신이 직접 "소프트뱅크 그룹에 매우 중요한 투자"라며 자신했던 광산업 투자에서도 쓴맛을 봤다. 소프트뱅크가 2018년 4월 약 80억엔(약 850억원)을 투자해 지분 9.9%를 사들인 캐나다 리튬광산회사 네마스카리튬은 지난달 24일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공급 과잉 우려로 최근 리튬 가격이 폭락하면서다. 비전펀드 투자 직후인 2018년 5월 탄산리튬의 가격은 킬로그램(kg)당 18달러였으나 현재는 절반 이상 떨어진 8달러대이다.

강민수 기자, 김수현 기자

손정의 뚝심 "비전 있으면 돈이 따라온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7월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만찬 회동을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7월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만찬 회동을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비전이 있으면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

자신의 투자처에서 최근 잇따라 잡음이 나고 있지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본인의 투자 판단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지난달 6일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에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과 만난 그는 "젊고, 크레이지하며 멋진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가를 발굴해 그 기업가가 세계를 바꾸는 일을 지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일이 즐거울 때는 지적인 자극을 받을 때"라고도 했다.

손 회장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수차례 '기업가는 무언가에 미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사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엉망이더라도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도하려면 '상식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업가에 중요한 것은 위대한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팀을 만드는 것이며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고 말한다.

손 회장이 투자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소프트뱅크그룹의 대규모 적자(약 7조4000억원)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까지 적자를 낸 것은 창업 이래 처음"이라며 "내 투자판단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툴렀다는 것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대규모 적자가 과정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손 회장은 앞으로도 위워크처럼 기업 가치를 과대평가해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경우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아주 많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싸게 산 것도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총 가치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소프트뱅크그룹이 보다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삼다보니 과대 평가의 실수가 생긴다는 비판이다.

손 회장은 그러나 10억달러를 넘는 기업가치를 지닌 비상장 벤처기업, 즉 '유니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생각이다. 그 이하의 기업들은 일시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어도 경쟁사에 뒤처지거나 도중에 사업을 관두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100만명 유저를 확보하면 10억달러의 기업가치가 있다"며 "유니콘 레벨까지 성장시킨 것은 돌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정보혁명'(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싶어하는 손 회장은 AI(인공지능)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손 회장은 지난해 7월 한국에 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떄도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말한 바 있다. AI가 다른 산업들을 모두 뒤집어버리는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인지 기자

'손정의 통큰투자' 쿠팡은 투자실패 역풍없나
쿠팡은 '로켓배송'을 선보이며 국내 쇼핑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머니투데이DB쿠팡은 '로켓배송'을 선보이며 국내 쇼핑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머니투데이DB
"우리는 쿠팡이 e커머스를 더욱 혁신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5년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1603억원)를 투자하면서 한 말이다. 손 회장의 통 큰 투자를 두고 당시 e커머스 업계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무모한 투자였다는 평가도 적지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e커머스 시장 규모는 45조원으로 이웃나라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이른바 소셜커머스가 새롭게 e커머스 시장을 진입했지만, 이베이코리아, 인터파크, 11번가 등 오픈마켓의 기세에 눌려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정의 회장이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건 '로켓배송'을 중심으로 한 쿠팡의 혁신적인 배송시스템에 매료돼서다. 당일 주문하면 이튿날 도착하는 신속한 배송시스템과 전국 단위 물류센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배송 경로 최적화 기술 등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렇게 10억달러는 로켓배송을 쏘아올린 '연료'역할을 했다.

손 회장의 전망처럼 쿠팡은 국내 쇼핑의 패러다임을 뒤집어놨다. 세 집 건너 한 집은 쿠팡을 이용하고,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대신 쿠팡에서 장을 보는 상황이다. 쿠팡의 매출액은 지난해 4조4228억원으로 4년새 10배 이상 성장했다. 국내 e커머스 시장은 114조 규모로 늘었다.

쿠팡의 가파른 성장세를 직접 목격한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말 쿠팡에 20억달러(약 2조3224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역대 국내 IT기업에 대한 외부투자 사례 중 사상 최대규모다. 이는 고스란히 쿠팡의 지배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쿠팡 거래액은 13조원으로 전망되는데 사상 처음 단일 e커머스 서비스로 10조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재 쿠팡의 로켓배송 상품은 400만개를 넘고 하루 100만개 이상 상자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재구매율과 객단가도 꾸준히 상승세다.

그러나 앞으로 전망은 불투명하다. 먼저 늘어나는 적자가 부담이다. 쿠팡은 2018년 1조97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71.7%나 늘었다. 쿠팡은 점유율 확보를 위한 '계획된 적자'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국내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뒤 점진적으로 턴어라운드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내년이면 자금 동나는 쿠팡, 로켓배송 계속갈까

손 회장이 쿠팡의 계획된 적자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지가 문제다. 벌써 쿠팡은 지난해 말 조달한 약 2조원 중 절반이 넘는 1조3000여억원을 대주주인 미국 쿠팡LLC로부터 유상증자 형태로 조달했다. 내년이면 손정의 회장으로 받은 2조원도 동이 난다.

최근 손 회장의 '위워크', '우버' 등 투자 실패가 뼈아프다. 그는 최근 소프트뱅크 결산 발표회에서 "투자처가 적자에 빠졌다고 해서 이를 구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쿠팡이 나스닥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와 나이키·월마트 출신 재무전문가를 영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쿠팡의 기업가치는 약 90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받고 있다.

한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손 회장의 상황을 보면 쿠팡에 추가투자를 기대하긴 쉽지않을 것같다"면서도 "쿠팡이 올들어 일부 공급사와 가격관련 마찰을 빚는 와중에도 여전히 과감한 투자와 마케팅을 지속하는 것을 보면 나스닥 상장이나 추가투자 등에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투자실패'에도 손정의·소프트뱅크 韓스타트업 '큰손’
[MT리포트]"스타트업 생태계에 독 풀었다"…손정의의 민낯?
우버, 위워크 등 투자 실패로 위기에 직면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한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에선 예외다. IT(정보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다방면 투자를 단행하면서 벤처투자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선제적 지분 확보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 수익을 창출하면서 창업자들이 선망하는 벤처투자사로 자리잡았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 주체는 소프트뱅크벤처스다. 2000년 설립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소프트뱅크의 한국 계열사인 소프트뱅크코리아의 완전 자회사로, 그룹 내 유일한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다. 비전펀드의 쿠팡 투자를 제외한 국내 투자 사례 대부분이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통해 이뤄졌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미래를 선도할 기술 기업에 투자하라'는 손 회장의 투자 철학을 충실히 실행했다. 넥슨, 선데이토즈, VCNC, 코빗, 헬로네이처 등이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다. 이들 기업은 상장과 매각을 통해 상당한 투자수익을 안겼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전자상거래, 모빌리티, 인공지능(AI), 온라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유망 기업들에 투자를 지속해왔다. 2017년 28곳 859억원, 33곳 2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프레시지, 당근마켓, 클래스101, 의식주컴퍼니, 트레바리 등 국내 기업에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까지 투자한 기업은 250곳이 넘는다. 쏘카도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출처=소프트뱅크벤처스 홈페이지./출처=소프트뱅크벤처스 홈페이지.
소프트뱅크벤처스 운용 자산은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표 펀드는 차이나벤처스펀드I와 그로스엑셀러레이션펀드로, 자금 규모가 각각 3400억원, 3200억원에 달한다. 차이나펀드I은 중국 테크·미디어·콘텐츠 스타트업, 그로스펀드는 아시아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투자 대상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올 초 영문 사명을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로 변경하고, 투자 범위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초기 투자로 넓혔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 유치가 유망 기업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투자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오픈서베이의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에 따르면, 창업자(73명) 투자유치 선호도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23.6%)는 알토스벤처스(29.2%)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인지도에서는 소프트뱅크벤처스(89%)가 1위, 알토스벤처스(84.9%)가 2위를 차지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 9월 소프트뱅크벤처스를 '자상한 기업'(자발적 상생기업) 6호로 선정했다. 적극적인 AI 투자 활동을 통해 관련 생태계 조성에 기여한 공로다.

최근 라인·야후재팬 경영통합 결단을 내린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스타트업 투자 분야에서 먼저 손잡았다. 두 회사는 2016년 11월 미디어, 콘텐츠 기업 투자를 위해 500억원 규모 에스비넥스티미디어이노베이션펀드를 결성했다. 네이버가 400억원, 소프트뱅크벤처스 45억원, 한국벤처투자 5억원을 출자했다. 이후 6개월 만에 500억원을 추가 출자, 펀드 규모를 2배로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벤처스 투자금 유치는 수준 높은 기술력과 사업성을 인정하는 보증수표와 같다"며 "사업 전개 과정에서 차별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서진욱 기자

"악덕 자본가" 손정의 향한 비판의 이유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00년 중국으로 날아가 무명의 창업가 마윈을 만났다. 손 회장은 단 5분만 대화하고 알리바바 투자를 결정했다. 그런가 하면 2005년엔 애플 CEO(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를 만나 있지도 않는 제품을 놓고 담판을 벌였다. 손 회장은 한장짜리 그림을 건네며 아이팟과 휴대폰을 합친 제품을 제안했다. 이를 본 잡스가 "이미 구상하는 게 있다"고 말하자 손 회장은 "그럼 출시하면 독점 판매권을 달라"고 했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이동통신사 사업권조차 없었을 때였지만, 2008년 아이폰을 독점 출시하면서 일본 통신업계 1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마윈과 잡스 두 사람은 모두 손 회장에게 "미쳤다"라는 말을 했다.

이런 '미친 투자 감각'을 가진 손 회장은 2017년 1000억달러(약 116조원) 규모의 비전펀드를 출범하면서 전세계 최고의 IT(정보기술) 투자 큰손이 됐다. 올해초까지만 해도 수십억 달러의 투자 계약서에 서명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현재는 이런 투자 방식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투자한 업체들에서 부정적인 소식이 이어지면서다.

현재 손 회장을 보는 외부 시선들은 비판이 가득하다. 한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직감에 의존해 왔던 그의 투자 방식이 이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11월 23일 '손정의는 테크 선지자 인가 악덕 자본가'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소프트뱅크의 창업자가 '테크 구루'에서 점점 더 19세기 수익을 위해 일꾼들을 쥐어짰던 '악덕 자본가'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기사는 손 회장의 위협적인 투자 방식을 지적했다. 지난 3년간 손 회장은 스타트업들에게 자신의 투자를 거절할 경우 경쟁사에 투자하겠다고 위협하며 투자를 해왔고, 때로는 경쟁사에 투자한 후 합병하는 방식으로 관심있는 기업을 흡수해왔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소프트뱅크가 IT버블이 원흉이 됐다"는 쓴소리를 날렸고, 영국 가디언지도 "규제없는 시장에서 과도한 민간 자본 투자가 증명한 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스타트업) 경제가 더이상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향인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커진다. 일본 주간지인 동양경제는 "손 회장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닮으려고 하지만 투자 방식은 현저히 다르다"고 했다. 철저히 자신이 '아는 것'에 의존해 투자하는 버핏의 투자 방법과 달리 손 회장은 감각에 더 의존하고,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해 사업 생태계 속 기업들을 모조리 사버리는 '군 전략'을 선호한다. 실제 버핏 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금융, 기술, 소비재, 항공 등 종목에 50여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손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80여개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지 겐다이비즈니스도 올해 소프트뱅크가 가장 조심해야하는 건 "손정의 신성화"라고 언급했다. 신문은 "손 회장이 '이것이 좋다'라고 높이 평가하면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며, 투자 대상 기업마저 신성시 되는 문화가 소프트뱅크내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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